‘다우’ 사명만 갖고 창업… 증권가에 벤처 씨앗, 재계 51위로 ‘키움’ [2024 재계 인맥 대탐구]

‘다우’ 사명만 갖고 창업… 증권가에 벤처 씨앗, 재계 51위로 ‘키움’ [2024 재계 인맥 대탐구]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24-04-22 18:42
수정 2024-04-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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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벤처기업인’ 김익래 스토리

업종도 정하지 않고 개업식 일화
약속대로 10년 뒤 유가증권 상장
다우기술, 한글화 작업으로 수익
키움증권으로 온라인 시장 개척
“광고보다 낫다” 야구단 6년 후원
내년 초대형 IB 진출 재도전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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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증권 사옥 전경.
키움증권 사옥 전경.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서 약속하겠습니다. 다우기술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로 만들어 앞으로 10년 후에 기업공개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을 크게 갖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다같이 힘을 합쳐 헤쳐 나갑시다.”

1986년 1월 청평댐 하류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경기 가평 화야산 정상에서 등산복 차림의 청년 기업인 김익래(당시 36)는 10여명의 직원과 함께 개업식을 겸해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며 호언장담했다. 당시엔 ‘세상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뜻을 담아 ‘다우’(多佑)라는 사명만 정했을 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업종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10여년 뒤인 1997년 8월, 그는 다우기술을 국내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키며 약속을 지켜 냈다.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명단에 새롭게 등장한 데 이어 지난해 기준 재계 51위에 이름을 올린 다우키움그룹은 이렇게 출발했다.

국내 ‘원조 벤처기업인’으로 꼽히는 김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1950년 12월 16일 강원 강릉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경복고,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문과 어문계열 출신이다. 국내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관련 스타트업 창업자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인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스펙이다. 부인 이경애(69)씨와는 누나의 소개로 만나 1남 2녀를 뒀다.

대범하면서도 소신이 강한 성격이라는 평이다. 1976년 한국IBM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홍콩 출장길에서 만난 IBM 극동지역본부 사장의 “IBM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번 돈을 전부 본사로 가져가고 한국IBM이나 한국 발전에는 소홀한 것 같다”고 직언했다가 본사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혀 퇴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IBM 퇴사 후인 1981년 1월 이범천 카이스트 교수와 함께 ‘국내 1호’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큐닉스를 공동 창업한 데 이어 큐닉스 동료들과 함께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다우기술을 설립했다. 다우기술은 유닉스 한글화 프로젝트를 계기로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 작업으로 수익을 냈다.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한국 대리점 역할을 하고 있던 현대전자의 고 정몽헌 회장을 직접 찾아가 6개월 안에 유닉스 한글버전을 만들겠다고 설득해 4억 8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1992년 IT서비스기업 다우데이타 설립을 시작으로 사세를 확장, 소프트웨어 개발툴 유통사업으로 영역을 넓힐 즈음에 1994년 정부가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단속에 나서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를 견뎌낸 직후인 2000년 1월 “벤처 DNA를 증권업계에 심겠다”는 포부로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김범석 팀장을 초대 사장으로 키움닷컴증권(현 키움증권)을 설립했다. 주식 거래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해 온라인 증권시장을 개척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영업점이 없다는 점을 활용해 저가의 수수료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 2005년부터 19년째 주식위탁매매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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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름에서 닷컴을 떼어 내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고, 2009년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2022년 4월에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들 중 금융위원회의 지정을 받은 곳이다. 같은 해 7월에는 다우키움그룹이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이고 2개 이상 금융업을 하는 금융복합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2016년에는 우리은행 지분(4%) 인수에 성공하기도 했다.

2018년 프로야구단 서울 히어로즈의 구단명을 ‘키움 히어로즈’로 명명하는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면서 6년째 키움 히어로즈를 후원하고 있다. 연간 스폰서 금액은 약 1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한국프로야구뿐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MLB)까지 섭렵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해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컸다는 후문이다. 키움 히어로즈 2군 선수들 이름까지 모두 외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증권업계 최초로 야구장 펜스 광고를 집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야구단 스폰서십 체결은 개인적인 관심보단 비즈니스적인 입장에서 접근했다. 당시 키움증권은 약 60억원을 들여 6개월간 TV 광고를 진행했는데, 비슷한 금액을 들이면 야구단을 후원하는 쪽이 훨씬 큰 홍보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7년 인터넷은행 직접 진출을 검토했다가 은산분리 정책에 발목이 잡혔고, 2019년 ‘키움뱅크’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3인터넷은행 설립에 도전했지만 기존 인터넷전문은행과 차별화된 사업모델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지난해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진출 의지를 다졌으나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연루 의혹과 영풍제지 대규모 미수금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며 제동이 걸린 상태다. 김 전 회장도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난해 5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의 2배 한도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어 대규모 자금 조달에 유리하다. 현재 국내 증권업계에서 초대형 IB는 미래에셋·한국투자·NH·삼성·KB증권 등 5곳이다. 키움증권 측은 내년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목표다.
2024-04-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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