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안 썼다고 끌려가…이란, 의복 개혁 맞을 준비됐을까 [클로저]

히잡 안 썼다고 끌려가…이란, 의복 개혁 맞을 준비됐을까 [클로저]

강민혜 기자
입력 2022-09-25 09:11
수정 2022-09-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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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개혁의 대상이 됐던 히잡
결정 주체에 당사자 있던 적 있나
혁명 이후 퇴행한 의복 개혁
반복되는 역사, 이번엔 어떤 결말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마흐사 아미니 추모 시위. 2022.09.20 EPA연합뉴스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마흐사 아미니 추모 시위. 2022.09.20 EPA연합뉴스
“죽기 전에 이란에서 히잡 시위하는 걸 보다니”

25일 SNS에 이란, 히잡 해시태그로 상위 노출되는 게시물은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란에서 히랍 미착용 혐의로 종교 경찰에게 끌려가 옥중 사망한 20대 여성의 소식이 알려진 후 시위는 이날 기준 10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날 기준으로 이 규탄 시위에서 나온 사망자는 35명입니다.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13일 체포돼 16일 사망했고, 이를 기점으로 수도 테헤란 등을 기점으로 규탄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란인권(IHR)의 발표로 아미니가 체포 후 머리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게 알려졌지만, 이란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허위라면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히잡 착용 반대 시위였으나 곧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졌고, 이에 맞서는 맞불집회 성격의 친정부 시위도 이어져 테헤란은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아미니는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테헤란에서 체포됐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 날 아미니가 이 같은 불행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날 테헤란의 혼란과 사망자도 없었을 겁니다.

SNS를 통해 전세계에 퍼지고 있는 영상에는 이 같은 시위에서 여성과 함께 나선 이란 남성들의 모습도 주목받았습니다. 여성 인권이 억압돼 있는 이란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들과 그들만을 집요하게 몽둥이로 때리려 하는 일부 경찰, 그 사이를 가로막은 남성들의 모습은 이란의 모든 이들이 이 같은 부조리에 침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놀라게 했죠. 시위 현장을 담은 영상에는 “모두가 침묵하던 게 아니었다”, “내가 살아서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벗기 위해 시위하는 걸 보게 되다니” 등의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마흐사 아미니를 위한 규탄시위다. 아미니의 사망 발표 후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2022.09.20 AFP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마흐사 아미니를 위한 규탄시위다. 아미니의 사망 발표 후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2022.09.20 AFP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이 퍼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최초로 히잡을 금지한 나라였고, 반대 운동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34년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전국 학교에 히잡의 구시대성을 알리는 강의를 하도록 했고, 1936년 1월 7일 히잡이 금지되기까지, 이란에도 히잡을 쓰지 않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던 때가 있습니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시선을 막는 역할을 하며 정숙하다고 표현됩니다. 타인의 시선을 전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일입니다. 여성들은 되레 서로간에도 히잡을 착용하라고 독려하거나 히잡을 쓰지 말라는 외국인의 주장을 폭력적인 것으로 인식, 갈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 등 베일을 쓰고 외출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제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히잡을 공간 분리로 여기는 무슬림에게 외출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죠.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교육받았습니다. 이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여성이 몸을 가려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읽힐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관습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히잡은 소수자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사자나 당사국이 아닌 이상, 함부로 개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이란이 갑자기 근대화된다는 가정을 해도, 기존의 보수화된 인식을 물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러나 무고한 삶이 단순히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러지고 있으며, 그것이 당연하게 치부되고 있다면, 히잡이라는 옷차림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알아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히랍 규탄 시위에 맞서는 맞불집회 성격의 시위다. 2022.09.23 AFP연합뉴스
히랍 규탄 시위에 맞서는 맞불집회 성격의 시위다. 2022.09.23 AFP연합뉴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파흘라비 왕권(1925~1979)으로 가봅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지만 이 때의 이란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서구화를 꾀하며 여성의 근대화를 강조했던 파흘라비 왕권 내에서는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공론화되기도 했습니다. 히잡을 착용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있었고, 1936년에는 히잡 착용이 금지되는 일도 생깁니다. 외국인인 일부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이란 여성들이 당연히 좋아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여성들 사이에 찬반논쟁이 있었듯, 히잡 착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이란 내부에서도 여성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히잡을 벗은 경우, 오늘날처럼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일도 생겼습니다. 성직자까지 반대해 히잡 착용 금지는 도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히잡뿐 아니라 서구화에 역행된다고 생각되는 고유 의상들이 상당수 금지됐는데, 히잡만은 반발로 인해 예외가 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자의 의지로 인해 정부기관 등을 중심으로 히잡 착용이 금지되기 시작하면서, 전형적인 톱다운 형식으로 히잡 착용이 금지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반대로, 히잡을 착용시키기 위해 같은 방법이 사용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모순적인 지점입니다.

또한,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히잡 금지가 히잡 의무로 바뀌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합니다. 혁명 후 왕권이 약해지자 히잡도 부활합니다. 혁명이었으나, 히잡 강제 측면서는 혁명이 아닌 퇴행입니다. 여성들도 혁명에 참여했지만, 결과는 다시 몸의 제약입니다. 나아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태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같은 내용은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습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최근의 비극이 일어났고, 이란에서는 눈에 띄는 여성들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경찰에 잡혀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이란의 히잡은 역사 속에서 억압, 근대화 대상, 왕권에의 저항, 억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거쳤습니다. 어디에도 의상을 입는 주체인 여성의 결심은 없고, 모두 타인으로부터의 결정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종교나 거시적 담론까지 갈 것 없이, 국가나 타인이 제3자의 의복에 관여하는 일은 부자연스럽습니다. 히잡이 근대화와 개혁의 대상이 됐던 파흘라비 왕권 때처럼, 오늘날 이란의 일부 남성도 나서 함께 하는 시위에 이번에는 어떤 역사적 의미가 들어갈까요. 이란의 혁명 이후 1980년대 거리에서, 2010년대 SNS를 통해 진행됐던 반히잡 운동이 이번에는 어떤 정반합의 결론을 낼지 관심이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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