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 한탄했지만…세상 바뀌니 대접도 달라졌다 [클로저]

여자로 태어나 한탄했지만…세상 바뀌니 대접도 달라졌다 [클로저]

강민혜 기자
입력 2022-04-23 17:53
수정 2022-04-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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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에서 문 밖으로
시간 흐르자 열린 문
갇혀 있던 호소들
이제야 세상 밖으로

규중문학의 정수 내방가사
‘문 안’ 여성들의 이야기
시대상 반영 개인사 다수
한글로 담은 시대사
귀중한 기록으로
내방가사 등 여성 가사는 당시 사회적 지위, 역할, 교육 등을 상세하게 보이는 귀중한 자료다. 강민혜 기자
내방가사 등 여성 가사는 당시 사회적 지위, 역할, 교육 등을 상세하게 보이는 귀중한 자료다. 강민혜 기자


“사람마다 원하는 것 노력하면 되지마는
생남생녀 그일만은 마음대로 안되나니
무슨죄가 지중해서 여자되어 생산하며
무슨적선 많이해서 남성으로 태어날꼬” (신혼가)

문학은 시대상과 작가정신의 반영입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의 글을 내방가사라 부르는 건 앞선 문장이 완벽히 구현된 결과는 아닐까 하는데요. 엄격한 유교질서 탓에 여성은 주로 내방에 머물러야 해 ‘가사’에 ‘내방’이 붙은 것일 테니까요.

본래 규중 여인들을 중심으로 ‘가사’나 ‘두루마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내방가사는 여인들이 지었다는 특성 탓에 구체적인 시기나 배경을 알기는 무리가 있어요. 그 이름이나 시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개인적 자료이기 때문이에요.

내방가사는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남성 중심주의 사회였던 동아시아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노래한 글입니다.

다만 가사들이 여인의 생활을 담았다는 점과 시대의 한계, 민족의 상처, 남녀평등 교육의 시작 등이 순차적으로 담겨 있어 오랜 시간 이어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죠.

● 기록 남겼더니
시대 흘러 유산이 됐다
어쩌면 그들은 당연히 기록을 남겼을 뿐인데 이를 내방가사로 분리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 세계 여성들에게는 글이나 기록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점 등을 감안하면 오늘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일견 이해되기도 하죠.

조선 시대 여성의 공간은 주로 ‘문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닫힌 공간의 여성이 지은 내방가사라면 흔히 시집살이에 슬퍼하는 한·설움을 떠올리죠. 그러나 내방가사 주제는 참 다양했습니다.

한글을 사용해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주체적으로 표현해 서구 여성운동처럼 동아시아 여성들만의 가치를 드러낸 자료예요.

격변기 여성들만의 진솔한 생각을 담았고요.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들 주체적으로 기록한 글이라 가치가 높습니다.

한글이 여성들의 속풀이에 도움이 됐던 증거이기도 하고요. 한글이 일반에 받아들여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의미도 있죠.
신여성의 구두(왼쪽),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주도적으로 싸우자고 당부하며 주요 가치를 적은 글. 강민혜 기자
신여성의 구두(왼쪽),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주도적으로 싸우자고 당부하며 주요 가치를 적은 글. 강민혜 기자
● 수동성만 담았나
우리도 꿈이 있지
흔히 내방가사라 하면 여성의 수동적인 이야기를 담았을 것 같지만 그 시대 여성들에게도 다양한 꿈이 존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흠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했는데, 이를 노래한 여성들의 노래도 존재하죠. 또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신여성과 기존 전통을 답습하는 구여성 사이의 갈등도 소재였습니다. 하나의 고정관념에 갇힌 여성상이 아닌 참으로 다양한 소리가 존재했던 거죠.

당시 시대의 한계 탓에 여성이기에 가져야 했던 이름들도 있습니다. 노처녀 같은 단어가 그렇죠.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더라도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혹은 시대의 인식 탓에 그릇된 이름을 가져야 했습니다.

● 구여성·신여성 구분도
교육 현장 격변기까지
내방가사를 보면 당시 여성에게 결혼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죠. 앞서 언급한 신혼가 역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개화기를 거치면서 구여성과 신여성의 구분이 지어지고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자 여성의 노고를 담은 이야기도 펼쳐졌습니다.

또한 남녀평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교육 현장에 새 내용이 들어오자 이를 반가워 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등의 기록도 존재합니다.

“낡은 도덕에 일신을 가둬놓고 행복을 꿈꾸는가
마음용기 다하여서 이사회를 개벽하세
마음이 열렬해도 모르면 아니된다
여와 우리 여자님네 배울학자 명심하여” (해방가)

“하물며 남녀가 평등하다 하니
규방안의 부인네도 쓰개치마 벗어버리고
이목구비 남자와같고 지각포부 같을진대
제분수로 하는일이야 남녀가 다르겠소” (위모사)

이렇듯 내방가사는 작자·연대 미상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해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과거 여성들은 제약된 삶을 살았으나 방 안에서 미래에 조명될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네요.

서양의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썼듯 동양에선 수많은 이름없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글로 나눴습니다.
내방가사, 여러분도 지어보길 바라요. 강민혜 기자
내방가사, 여러분도 지어보길 바라요.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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