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으로 만나는 깨달음 전의 부처
“천정 보고 뒷모습 보라”반가사유상 관람법
공간 구성 신경 써
MZ세대에게 유물 접근 벽 낮춰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돋보인다. 한 쪽 뺨에 손가락을 대고 화려한 보관을 착용했다. 천정의 디자인이 반가사유상을 위한 배경화면처럼 보인다. 강민혜 기자
숨겨진 1도. 이건 과연 우리가 유의미하게 느낄 수 있는 경사일까요. 박물관측은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바닥에 1도를 숨겨 넣어 건축가가 의도한 ‘투시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1도의 정점에, 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이 곳이 바로 건축가가 의도한 투시점 지점인데요.
이곳에 서서 사유의 방을 바라보면 높이 1m의 반가사유상을 1.2m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즉, 앞을 내려다 보는 싯다르타 혹은 미륵보살의 얼굴을 올려다 보다, 뒤를 돌아 0.2m 높은 지점에서 그의 굽은 등을 보라는 의도죠.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2층 사유의 방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반가좌(半跏坐) 자세를 구현하려면 조각상을 만들 때 얼굴·팔·다리·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치마 주름도 세심해 제작하기 복잡하고 어렵다. 강민혜 기자
이것이 바로 경사 1도의 비밀입니다. 부처와 경사 1도. 옆으로 돌아보며 얼굴을 보라는 게 아니라요. 부처의 변함없는 그 은은한 미소와 뒤의 굽은 등을 당신의 시선에서 좀 더 가까이 내려다 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우리의 절들은 발길이 닿기 어려운 산등성이에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기도 했지만,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죠. 거기에는 부처의 위엄을 느끼라는 의도도, 그를 올려다보며 삶의 덧없음과 그를 통한 고통 해방을 느끼라는 의도도 존재했습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78호와 달리 담백힌 다자인이 특징이다. 78호에 비해 단순한 보관을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 독특한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강민혜 기자
7세기 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이돌’ 반가사유상 두 점은 해외에 알려진 유명세에 비해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했습니다.
해외에선 한국 명품 유물 등으로 비교적 알려졌지만 국내 전시관 3층 불교 전시실에 있던 작품들은 다소 관람객들의 외면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외부와 1·2층 볼거리에 다소 밀려 역사 마니아만 찾는 공간이 됐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반가사유상 두 점이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 우주 콘셉트 반가사유상
등에서 바라보면 ‘최종 1도 경사’ 투시점이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된 사유의 방 공간 천정을 바라보면 별이 내리는 듯한 밝은 조명에 천정을 지지하는 봉의 마감까지 색을 신경쓴 은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2층 사유의 방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보 78호와 달리 담백한 디자인이다. 머리에 낮은 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부른다. 국보 78호 상과 달리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다. 목걸이만 하고 있다. 강민혜 기자
반가사유상 뒤에 서 0.2m 높은 위치에서 사유의 방을 한 눈에 바라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 겁니다.
이현숙 국립중앙박물관 경력관은 “건축가가 사유의 방 구조를 보더니 투시점이 있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관람객들도 미세한 차이에 예민하다면 분명 공간 끝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고개 들어 천정 보면
별빛 내리는 전시 구성투시점에만 신경쓴 건 아닙니다. 천정 구성도 달리 했죠. 1400년 전의 유물이 오늘날의 관객을 만났다는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시간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이를 위해 돔 형태의 천정은 우주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만 조명 46개를 은은하게 설치했죠.
사유의 방 천정은 우주를 형상화했다. 알루미늄봉 끝 오돌토돌한 면이 조명을 은은히 머금고 있다. 1400년을 흘러 우리 곁에 등장한 반가사유상을 통해 시간의 영속성을 보이고자 한다. 사유의 방에서 천정은 이러한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강민혜 기자
벽은 페인트를 쓰지 않고 토공을 불러 적토를 발랐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투박하게 바른 벽에서도 따스함을 느끼라는 기획입니다. 반가사유상 위에는 간접 조명을 내려 눈이 부시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현숙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디자인 전문경력관은 “지금 사유의 방 조명은 보기 좋은 최적화의 상태”라면서 “일반 유물 전시 조명보다 조금 밝게 해 반가사유상이 잘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죠.
● 원한다면 설명 보라
당신의 느낌이 우선현재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은 각각 6세기 중후반(78호)과 7세기 전반(83호)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각 높이 83.2㎝, 93.5㎝의 이 두 금동반가사유상은 자연스러운 옷 주름, 균형잡힌 신체가 엿보입니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뒷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83호는 그로부터 약 50년 전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78호에 비해 제작 측면에서 튼튼해졌습니다. 주물 방식과 뼈대 등에서죠. 주조 기법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전의 반가사유상이 약했던 부분을 83호는 보완했어요.
덕분에 이전 반가사유상의 등이 너무 얇아 생긴 문제는 83호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몸체를 두텁게 한 덕분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반가사유상들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가사유상 등장은 한국 조각사의 시발점으로 꼽힙니다. 혹자는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을 일컬어 석굴암과 함께 불교 조각사의 정수라고 극찬하죠.
신소연 연구사는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인지 싯다르타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둘은 깨달음 전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이 힘든 시기를 겪는 MZ세대에게 동질감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