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반도체 핵심기업 쯔광그룹 파산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꼽혀 온 쯔광그룹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견뎌지 못하고 결국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은 쯔광그룹의 자회사 창장춘추의 후베이성 우한 반도체 공장 모습.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中 대표 반도체 기업, 결국 워크아웃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쯔광그룹은 파산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간 지 4일 만인 지난 20일 밤 전략투자자 유치 공고를 냈다. 베이징시 중급인민법원은 앞서 19일 채권자 후이상(徽商)은행이 낸 쯔광그룹 파산 구조조정 신청을 받아들이며 구조조정 절차를 맡을 관리인으로 현 경영진을 임명한 바 있다.
중국의 기업 파산법은 관리인이 법원의 파산 구조조정 인용 결정으로부터 6개월 안에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법원과 채권단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한 내에 관리인이 구조조정안을 내놓지 못하면 법원은 채무자의 파산을 선고한다.
파산 절차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추가 투자자 유치와 채무 조정을 통해 기업을 살리는 파산 구조조정이다. 다른 하나는 채무 기업을 해산시키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나눠 주는 파산 청산 절차다. 쯔광그룹에 적용되는 절차는 파산 구조조정인데, 이는 빚의 일부를 탕감하거나 출자 전환해 존속 가치가 있는 기업이 살아날 발판을 마련하게 해 준다는 면에서 한국의 워크아웃(기업회생 절차)과 비슷하다. 쯔광그룹은 파산 구조조정 개시 전에도 이미 잠재적인 투자자들과 물밑 협의를 진행해 왔는데 이제 이 같은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셈이다.
쯔광그룹은 이번 공고에서 전략투자자가 자사의 사업 일부가 아닌 사업 전체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여러 기관과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략투자를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쯔광그룹에서 수익성이 좋은 일부 사업체만 따로 인수하는 데 관심을 보이는 저장(浙江)성 국유자산관리위원회(국자위)와 저장성 항저우(杭州)시 국자위, 알리바바그룹 등 잠재적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제안인 만큼 결과가 주목된다. 이들은 쯔광그룹이 46.45%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 쯔광구펀(紫光股)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쯔광구펀은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다. 서버와 PC, 공유 클라우드, 공유기 등의 사업 분야에서 화웨이(華爲)와 경쟁 중인 신화싼(新華三)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쯔광그룹이 제시한 전략투자자 신청 마감일은 오는 9월 5일이다. 이날 신청 상황에 따라 쯔광그룹의 존속 여부가 1차적으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쯔광그룹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졸업한 명문 칭화(淸華)대 산하 기업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와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이다. 칭화대의 기술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가 지분 33.3%(지난해 6월 기준)를 갖고 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자오웨이궈(趙偉國) 쯔광그룹 회장은 지분 33.3%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 국자위의 직접 관리를 받는 중앙기업인 쯔광그룹은 산하 자회사만 588곳에 이른다. 쯔광구펀을 비롯해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창장춘추(長江存儲·YMTC), 반도체 설계업체 쯔광궈신(紫光國芯), 팹리스 쯔광궈웨이(紫光國微), 휴대폰 반도체 전문 설계업체 쯔광잔루이(紫光展銳·UNISOC), 교육서비스업체 쯔광쉐다(紫光學大) 등 상장사만도 36곳이나 된다.
쯔광그룹은 한때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조성한 기금 230억 달러(약 26조 5000억원)라는 거금을 활용해 아낌없이 지원했을 정도로 ‘국가대표급’ 유망 기업이었다. 더욱이 2018년 4월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창장춘추 공장을 직접 방문해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당시 자오 회장은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0년 내에 세계 5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에 힘입어 창장춘추와 쯔광잔루이, 쯔광구펀, 쯔광궈웨이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종합 반도체업체(IDM)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쯔광그룹은 중국 안팎에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음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해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됐다. 2015년에는 휴렛팩커드의 네트워크 장비 공급업체 h3c 테크놀로지 지분 51%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6년에는 후베이성 지방정부, 중국 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과 협력해 창장춘추를 설립했다. 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투자였다. 차이신은 “쯔광그룹이 지난 10년간 대규모 해외 인수합병(M&A)에 나선 가운데 산하의 여러 반도체 사업에서 돈을 불태웠지만 스스로 이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부족했다”며 “2019년 이후 채권을 발행하지 못했고 계속 쌓인 채무로 결국 위기가 폭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쯔광그룹이 몰락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이때부터 부채 상환 압박이 시작됐는데 그 시기 그룹 부채는 이미 2029억 위안(약 36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13억 위안 규모의 회사채를 갚지 못하면서 첫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냈다. 이어 12월에는 4억 5000만 달러짜리 외화표시채권도 만기에 상환하지 못해 부채는 급격히 늘어났다.
반면 사업으로 돈을 벌어 빚을 갚을 능력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 쯔광그룹의 순이익은 2억 7500만 위안에 그쳤다. 2019년 기준 쯔광그룹의 전체 자산은 3000억 위안 규모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 홍콩사무소의 게리 응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코노미스트는 “백기사가 구조조정 전에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려운데 지금까지는 한 명도 없었다”며 “구조조정 절차가 끝나면 외부 투자자를 찾는 게 훨씬 쉬워질 것”이라며 사실상 계열사 분리매각이 불가피함을 내비쳤다.
중국 반도체 업계는 쯔광그룹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향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쯔광그룹의 창장춘추는 수백억 위안대의 자금을 투입해 충칭(重慶)시 양장(兩江)신구에 D램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고 64단 3D 낸드 기반의 256기가바이트급 낸드 플래시 등 일부 제품을 양산 중이다. 그러나 아직 투자 규모 대비 실적은 미진해 시장 내 존재감은 매우 약한 편이다. 차이신은 “(중국)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비상장사인 창장춘추의 생산 확대 계획이 쯔광그룹의 채무 문제로 지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품귀 속 ‘반도체 굴기’ 계속 추진
다만 쯔광그룹은 국내 스마트폰용 시스템온칩(SoC)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쯔광잔루이가 만드는 SoC는 아직 미국 퀄컴이나 대만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이 만드는 제품보다는 사양이 떨어지지만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에 힘입어 중국 내 중저가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공급을 빠르게 늘려 나가는 추세다.
쯔광그룹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 기업정보 검색 플랫폼 톈옌차(天眼査)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설립된 반도체 관련 신규 기업은 2만 2000여개에 이른다. 이 중 90개 이상이 중국 기업공개(IPO) 절차에 들어갔다. 관영 신화통신은 반도체 분야에 대해 올해 ‘자금 블랙홀’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기업정보 공개사이트 치차차(企査査)는 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관련 투·융자 건수가 3374건, 총금액은 8000억 위안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 중 올해 상반기에만 2944억 위안에 이른다. 지난해 연간 투·융자액 1098억 위안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2021-07-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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