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멈춘 도시의 심장…꽃으로 뛰게 하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멈춘 도시의 심장…꽃으로 뛰게 하다

입력 2014-06-02 00:00
수정 201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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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벽화로 폐허를 살리는 ‘아름다운 전투’ 게릴라 가드닝의 세계

버려지고 황폐한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이 새로운 환경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콘크리트 틈, 내다 버린 운동화, 쓰레기장 등 허가받지 않은 공간에서 마치 게릴라처럼 몰래 ‘총 대신 꽃’을 심어 가며 도심 속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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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예정 지역인 경기 부천시 계수동에서 금미정(앞줄 왼쪽)씨 등 게릴라 가드너들이 자투리땅과 인적이 드문 골목길의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화단으로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개발 예정 지역인 경기 부천시 계수동에서 금미정(앞줄 왼쪽)씨 등 게릴라 가드너들이 자투리땅과 인적이 드문 골목길의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화단으로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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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의 게릴라 가드닝을 상징하는 그림 작품.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의 게릴라 가드닝을 상징하는 그림 작품.


지난달 28일 재개발 예정 지역인 경기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에 호미와 삽을 든 게릴라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먼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반란’을 일으킬 장소를 물색했다. 쓸모없는 자투리땅과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에 팬지, 비올라, 영산홍 등을 심어 화단을 만들기 위해서다. 규모는 작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이다. 오물을 치우고 흙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허물어진 담장부터 버려진 타이어, 깨진 항아리까지 모든 것이 화분과 꽃밭으로 변신했다. 바뀐 풍경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가겟집 아주머니는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왔다가 슬며시 돌아갔고, 어디선가 물통을 들고 나타난 할머니는 “내 집 앞에 정원이 생겼다”며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불과 세 시간 만에 일어난 변화다.

● 3시간 만에 쓰레기장을 정원으로 만든 ‘특급작전’

게릴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밴드’로 가드닝 관련 일정 및 장소와 작업량을 결정한다. 금미정 밴드장은 “게릴라는 어디에나 출몰할 수 있지만 올해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살고 있는 원도심 지역을 골라 침체된 마을에 꽃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부천시 원미구 가톨릭대의 동아리 ‘농락’(農·농사짓는 즐거움)은 학교 주변 환경 정화 활동을 하면서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하고 있다. 박재화(3학년) 동아리 회장은 “게릴라 가드닝은 단순히 꽃만 심는 것이 아니라 벽화를 그리고 재활용품을 활용해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멋진 벽화와 울긋불긋한 꽃이 피어 있는 예쁜 화단이 학교 주변은 물론 마을 여기저기로 번져 나갔다. 패기 넘치는 학생들의 활동을 가장 반기는 건 주민들이다. 작은 정원이 늘어날수록 자기가 사는 지역의 환경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다. 주민 김철동(45)씨는 “무심히 담배꽁초를 버렸던 곳인데 학생들이 꽃을 심어 놓으니 소중한 장소 같아서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게릴라 가드닝은 도심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도시의 미관에 변화를 주고 범죄를 감소시키는 효과까지 얻고 있다. 지역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속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정원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큰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부천시는 게릴라 가드너들과 식재 대상지, 꽃 모종 선정, 식재일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부천시 원도심지원과 마을만들기팀에서는 향후 시민 중심의 게릴라 가드닝 모임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지원을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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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운동화와 낡은 모자로 만든 꽃화분들.
버려진 운동화와 낡은 모자로 만든 꽃화분들.


주민들 스스로 만드는 화단이 마을 여기저기로 번져 나가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만드는 화단이 마을 여기저기로 번져 나가고 있다.


가톨릭대의 농락(農樂·농사짓는 즐거움) 동아리 학생들이 환경 정화 활동을 하면서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하고 있다.
가톨릭대의 농락(農樂·농사짓는 즐거움) 동아리 학생들이 환경 정화 활동을 하면서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하고 있다.


망가진 전기주전자의 화려한 변신.
망가진 전기주전자의 화려한 변신.


깨진 항아리에 꽃을 심어 나르는 부천시 계수동 주민.
깨진 항아리에 꽃을 심어 나르는 부천시 계수동 주민.


가톨릭대 ‘농락’ 동아리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역곡동에서 게릴라가드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가톨릭대 ‘농락’ 동아리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역곡동에서 게릴라가드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게릴라가드너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게릴라가드너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게릴라가드너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게릴라가드너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쓰레기 문제 해결은 물론 범죄 감소 효과까지

게릴라 가드닝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2004년 영국 청년 리처드 레이놀즈가 매일 밤 버려진 빈터의 쓰레기를 치운 후 꽃을 심고 물과 거름을 주는 모습을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금씨는 “작고 보잘것없는 꽃 하나가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고 상대방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금씨가 갖고 있는 ‘긍정의 에너지’야말로 세상을 향기롭게 바꾸는 중요한 밑거름이 아닐까. 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 ‘아름다운 전투’에 한번쯤 ‘참전’(參戰)해 보고 싶어졌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2014-06-02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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