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합죽선의 고향 전주에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합죽선의 고향 전주에 가다

입력 2013-06-24 00:00
수정 2013-06-24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합죽선(合竹扇)…어이, 시원하다! 선풍기·에어컨 물렀거라!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바로 맑은 바람이라!’(紙與竹而相婚 生其子曰淸風)

합죽선을 노래한 옛시조의 한 구절이다. 풍류와 운치가 묻어나는 시구가 올여름 유난한 더위 탓에 귀에 쏙 들어온다.

모시옷에 합죽선 부채를 받쳐 들고 정자에 모여 바둑을 즐기는 고즈넉한 촌로들의 모습이 무척 여유롭다. (전주 한옥마을)
모시옷에 합죽선 부채를 받쳐 들고 정자에 모여 바둑을 즐기는 고즈넉한 촌로들의 모습이 무척 여유롭다. (전주 한옥마을)


김동식 선자장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만들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만들고 있다.


백지선(白紙扇)에 서화를 그려 넣고 있는 최명성 화백.
백지선(白紙扇)에 서화를 그려 넣고 있는 최명성 화백.


김동식 선자장(扇子匠.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만들고 있다. (도배 : 부채 치수에 맞게 재단하여 붙히기)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김동식 선자장(扇子匠.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만들고 있다. (도배 : 부채 치수에 맞게 재단하여 붙히기)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갈퀴 모양으로 짠 부챗살에는 인두로 박쥐무늬를 꼼꼼하게 그려 넣는다. 밤에 몰래 만나는 남녀가 얼굴을 가릴 때 합죽선을 사용했다는 유래에서 박쥐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갈퀴 모양으로 짠 부챗살에는 인두로 박쥐무늬를 꼼꼼하게 그려 넣는다. 밤에 몰래 만나는 남녀가 얼굴을 가릴 때 합죽선을 사용했다는 유래에서 박쥐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김동식 선자장(扇子匠.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김동식 선자장(扇子匠.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올여름은 원전 가동 중단까지 겹치면서 전력난이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에너지 절약밖에 뾰족한 수가 없어 절로 땀이 흐른다. 이런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주 장차관들에게 부채를 하나씩 돌렸다. 길거리에서 나눠 주는 홍보용 부채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요즘, 정부가 에너지 절약 실천을 위한 ‘부채 나눔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단옷날에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으며 더위를 대비했다. 하얀 백지선(白紙扇)에 그림이나 좋은 글귀를 넣어 주며 풍류를 즐겼다. 하지만 19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부채는 점차 사라져 갔다.

이영두 명창이 부채를 들고 판소리 한 대목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영두 명창이 부채를 들고 판소리 한 대목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합죽선은 전통연희인 줄타기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민속촌)
합죽선은 전통연희인 줄타기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민속촌)
전주시 자원봉사 무용동아리 회원들이 공연에 앞서 부채춤 연습을 하고 있다.
전주시 자원봉사 무용동아리 회원들이 공연에 앞서 부채춤 연습을 하고 있다.
국내산 왕대를 쪼갠 후 양잿물에 삶으면 노랗게 색이 바랜다.
국내산 왕대를 쪼갠 후 양잿물에 삶으면 노랗게 색이 바랜다.
합죽선은  판소리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 주는 지팡이로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영두.박순실 부부명창. 전주한옥마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합죽선은 판소리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 주는 지팡이로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영두.박순실 부부명창. 전주한옥마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전주시 자원봉사 무용동아리 회원들이 전북교육문화회관에서 공연에 앞서 부채춤 연습을 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전주시 자원봉사 무용동아리 회원들이 전북교육문화회관에서 공연에 앞서 부채춤 연습을 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전주한옥마을의 어르신들이 합죽선으로 더위를 식혀가며 바둑을 두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전주한옥마을의 어르신들이 합죽선으로 더위를 식혀가며 바둑을 두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김동식 선자장(扇子匠·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은 4대째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살림집 일부를 개조한 16.5㎡(약 5평) 남짓의 단칸방이 그의 작업장이다. 바닥에는 나무 도마와 대나무로 깎은 부챗살이 흩어져 있다.

“합죽선은 다른 부채에 비해 손이 많이 갑니다.” 한 자루의 합죽선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나무를 베는 일부터 100여일이 소요된다. 손으로 직접 수십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할 정도로 손품이 많이 든다. 댓살에 베인 그의 손은 상처 투성이다. 힘을 주로 쓰는 엄지와 검지는 늘 붕대 신세다. 그의 섬세한 손놀림과 정교한 공정은 고종황제 당시 진상품(進上品)을 만들던 외증조부로부터 140여년 동안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기술이다. 전주 합죽선은 옛날부터 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을 두고 부채를 거둬들였을 만큼 품질이 빼어났다.

좋은 합죽선을 만들려면 역시 재료가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대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전주 합죽선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왕대만 사용한다. 쪼갠 대를 양잿물에 삶아 노랗게 색이 바래지게 한 뒤 얇게 살을 깎는다. 그다음 민어(民魚)의 부레를 끓여 쑨 풀로 댓살을 겹쳐 붙인다. ‘합죽’(合竹)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갈퀴 모양으로 짠 부챗살에는 인두로 박쥐무늬를 꼼꼼하게 그려 넣는다. 밤에 몰래 만나는 남녀가 얼굴을 가릴 때 합죽선을 사용했다는 유래에서 박쥐가 들어간다고 한다. 종이도 전주에서 생산되는 전통 한지만 사용한다. 질긴 한지를 댓살에 붙인 뒤 서화를 그려 넣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으면 비로소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부채인 ‘전주합죽선’이 탄생한다. 합죽선의 접은 모양은 한복치마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을 닮았고, 펴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학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한국의 합죽선은 바로 한국인의 몸이며 그 마음의 일부로 함께 살아 왔다. 사대부들은 의복을 갖춘 뒤 부채를 들어야 의관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합죽선은 판소리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 주는 지팡이로 사용됐다. 광대의 줄타기에서부터 무희(舞姬)의 춤에 이르기까지 합죽선은 신바람의 세계를 연출해 왔다. 우리 문화 곳곳에 자리 잡은 합죽선은 선조들의 느림의 미학이자 한지의 과학이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전통 부채가 선인들의 여유로운 지혜와 멋으로 다가온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2013-06-24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