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靑·赤·黃·白·黑…민족의 색채 ‘오방색’을 찾아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靑·赤·黃·白·黑…민족의 색채 ‘오방색’을 찾아

입력 2012-01-28 00:00
수정 2012-01-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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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조화… 오색에 깃든 삶의 지혜 놀랍구나!

지난 23일 임진년 새해 설맞이 공연이 한창인 국립국악원 예악당. 호탕한 모습의 가면을 쓴 무동(舞童)들이 오방색(五方色)의 옷을 입고 장단에 맞춰 한바탕 춤사위를 펼친다. 소매에 매달린 흰색 한삼 자락이 느린 음률을 타고 천천히 공중에 치솟았다 땅으로 떨어진다. 춤꾼들의 절제되고 수려한 몸놀림엔 힘이 넘친다. 벽사진경(?邪進慶). 새해 벽두에 액을 물리치고 희망을 기원하는 처용무(處容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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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처용무의 춤사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다섯 처용이 입고 있는 오방색의 옷은 오방과 오행, 사계절의 상생과 조화를 보여 준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처용무의 춤사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다섯 처용이 입고 있는 오방색의 옷은 오방과 오행, 사계절의 상생과 조화를 보여 준다.


국립국악원 강여주 학예사는 “다섯 처용이 입고 있는 오방색의 옷은 오방과 오행, 사계절의 상생과 조화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 오방색은 음양오행에 기반을 둔 민족적인 색채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정색이 각각 동, 남, 중앙, 서, 북쪽을 가리키며 정색 사이사이 중간 방위에 오방간색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선조들은 이와 같은 정색과 간색의 10가지 기본색을 음양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화평을 얻고자 했다. 우리의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음양의 원리가 오방색과 함께 젖어 있는 것이다.

단청은 이러한 오방색을 건축에 사용한 대표적인 예다.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로 화려한 색깔을 사용했고, 흰색과 검은색을 잘 수용해 격조 있는 색채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남산 팔각정의 단청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관광객 크리스틴(23·캐나다)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무늬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예로부터 새해가 되면 오방색이 조화를 이룬 음식을 만들어 한 해의 안녕과 소망을 빌었다. 오방색은 눈으로 즐기고, 맛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열쇠였다.
대표적인 궁중음식인 신선로에는 전형적인 오방색의 이미지가 드러난다(한식당 궁연).
대표적인 궁중음식인 신선로에는 전형적인 오방색의 이미지가 드러난다(한식당 궁연).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오방색의 미감을 현대미술의 표현 방식에 올려 본 시도다(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오방색의 미감을 현대미술의 표현 방식에 올려 본 시도다(국립현대미술관).


●단청·신선로·비디오아트 등 곳곳에 오방색 담겨

국립민속박물관 안정윤 학예사는 “전통적으로 맛에서는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오미(五味)를, 색상에서는 오색을 조화시키려 한 예가 많다.”며 “특히 신선로와 같은 궁중음식에서 전형적인 오방색의 이미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돌이나 동지, 설 같은 날에 잡귀를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팥죽의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고 아기를 낳거나 제를 지낼 때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치는 것도 모두 양의 색으로 잡귀를 물리치려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동양의 오행 철학에 한의학의 치료 원리가 더해진 일명 ‘음양오행 테라피’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한때 수지침이 선풍적인 인기를 받으면서 손이 우리 몸의 축소판으로 알려졌다. 손의 경락에 침을 놓는 대신 ‘색’을 칠해 아픈 부위를 낫게 한다는 ‘수지색채요법’은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높다.

우리 전통의 채색에 현대미술의 감각을 더하면 어떤 느낌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비디오 조각인 ‘다다익선’은 천여 개의 TV 화면을 캔버스처럼 이용해 오방색의 한국적 미감을 표현한 새로운 시도였다.”며 “작가는 이를 서로 다른 재료가 각각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비빔밥’에 비유했다.”고 말했다.
단청은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로 화려한 오방색을 사용했고 흰색과 검은색을 잘 수용해 격조 있는 색채 감각을 표현했다(남산 팔각정).
단청은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로 화려한 오방색을 사용했고 흰색과 검은색을 잘 수용해 격조 있는 색채 감각을 표현했다(남산 팔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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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경락에 침을 놓는 대신 ‘색’을 칠해 아픈 부위를 낫게 한다는 ‘수지색채요법’.
손의 경락에 침을 놓는 대신 ‘색’을 칠해 아픈 부위를 낫게 한다는 ‘수지색채요법’.


●손에 침 대신 色을 입혀라… ‘수지색채치료’에 활용

이처럼 오방색은 음양오행 사상이 전래된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잠재해 있어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오방색에는 단순한 빛깔로서의 색뿐만 아니라 방위와 계절, 더 나아가 종교적이며 우주관적인 철학이 담겨 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행에 따라서 용도와 신분에 맞게 색을 사용한 선조들의 가치관과 지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일주일 후(2월 4일)면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다. 오방색이 든 오신채(五辛菜)는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모둠 나물로 입춘 날의 시절음식이다. 겨우내 추위에 입맛을 잃어 고생하던 시절 시고 매운 생채나물 요리는 새봄에 미각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번 입춘엔 선조들이 물려준 오방색의 지혜를 되새기며 봄나물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글 사진 jongwon@seoul.co.kr

2012-01-2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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