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바다를 닮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최보기의 책보기] 바다를 닮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입력 2023-03-20 17:53
수정 2023-11-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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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펴냄
『나는 바다를 닮아서』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펴냄
바다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특별한 의미와 가치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고독한 사람은 유독 바다를 그리워한다. 외로운 사람, 슬픈 사람도 그러하다. 우리에게 바다는 대체 무엇이길래 과학이든 문학이든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게 하는 것일까.

바다가 소재인 문학을 들라면 소설로는 단연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일 것이다. 영어 원문을 읽어볼 처지가 못 돼 번역본을 읽은 후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게 세계적인 소설이라고? 나도 소설 써볼까?’였다. ‘쉽게 쓰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헤밍웨이가 충분히 입증한다. 84일을 허탕친 후 85일 만에 잡은 청새치를 지키려고 2박 3일간 망망대해에서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노인 산티아고가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 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그다음 얘기다.

바다가 소재인 시(詩)를 들라면 필자는 단연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꼽는다. 청춘의 한 때 시인의 꿈을 꾸었던 까닭이 이 시집 때문이었다. 그가 바다를 읊은 시들은 여러 성우의 멋진 목소리로 낭송돼 오늘도 인터넷을 흠뻑 적시는 중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는 시구가 가장 대중 친화적이지만 시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시구가 바다처럼 풍성한데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는 시구는 또 어떤가!

『나는 바다를 닮아서』는 소설 『통영』(2021, 강)의 작가 반수연의 산문집이다. 반 작가는 통영이 고향인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해외동포다. 고향에 대한 감정이나 향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도 아버지처럼 붕어빵에 하얀 설탕을 뿌려볼까 망설인다.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달콤하게 바꾼 아버지의 하얀 설탕이 사실은 내 평생 써도 써도 남을 유산이라도 된 듯 많은 날에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까. 아버지의 붕어빵은 내 삶을 단계마다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나와 함께 자랐다. 이제 나는 오래 떠올리는 아이의 마음 대신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자주 상상하는 어른이 되었다”. “장하고 복되다. 그렇다고 너무 먼 곳에 살아 미안했던 마음이 없어지진 않겠고, 사십구 년을 과부로 살아낸 한 여인의 생이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겠지만. 엄마 잘 가요.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나치게 다정한 내 목소리에 나도 놀라면서. 엄마 잘 가요.”처럼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바다를 닮은 사람의 모습이 궁금하거든 읽어볼 것을 권한다. 바다를 말하자니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괴테의 명언을 지나칠 수가 없다. 덧붙여 필자는 “거친 바다에 나선 배는 파도를 보지 말고 바다를 봐야 육지에 닿는다.”는 금언을 가슴에 새겨놓고 글도 쓰고, 산다. 분하다! 저 멀리 남쪽 바다에 계란처럼 떠 있는 섬 거금도가 고향인 필자 역시 바다에 대한 애증이 남다른데 ‘나는 바다를 닮아서’라는 멋들어진 책 제목을 반수연 작가에게 빼앗겨버렸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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