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협상의 주역인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2014년 12월 2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을 비롯해 양국 재무와 경제 장관, 분데스방크와 프랑스은행 책임자들에게 뭔가를 역설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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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유세 중 괴한의 총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되는 시련이 찾아왔다. 누구라도 절망하고 낙담했겠지만, 그는 불과 몇 주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해 통일 독일의 수도가 베를린이 돼야 한다고 의회에 호소해 이를 관철시키는 등 휠체어에 오른 채 평생 열정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
그런 불굴의 정치인 쇼이블레 연방하원 원로의장이 26일(현지시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사실이 하루 뒤에야 알려졌다.
AP와 로이터 통신 등은 유족들의 전언을 인용, 그가 전날 저녁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27일 보도했다. 독일 연방하원의회도 쇼이블레 원로의장의 별세를 발표했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42년 9월 18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난 쇼이블레 원로의장은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뒤 세무 공무원으로 일하다 1972년 서독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어 1984년에는 헬무트 콜 당시 총리의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내각에 처음 합류했고, 1989년에는 내무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 해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동독 측과의 협상을 통한 통일조약 마련을 주도, 독일 통일이 선언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부름을 받고 내각에 복귀했다. 내무장관과 재무장관 등을 지내며 2010년 그리스 국가부도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하는 등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즈(NYT)는 평가했다. 메르켈 전 총리와는 종종 주요 현안에서 날카롭게 각을 세우면서도 강한 유대감을 보여왔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가 2015년 11월 수십만 중동 이민자들에게 독일 국경을 열어줬을 때, 그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는 ‘눈사태’를 야기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반(反)이민을 내세워 세를 불려 온 극우성향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의 외국인 혐오 조장에는 선을 명확히 그어 메르켈 총리에 힘을 실어줬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기독민주당(CDU) 대표와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쇼이블레 원로의장은 2017년에는 독일 연방하원 의장으로 선출돼 2021년까지 재직하며 원로 정치가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2021년 배르벨 바스 현 의장이 취임해 원로의장으로 물러난 뒤에도 다양한 정치 현안에 목소리를 내왔다.
AP는 하반신 마비란 고난을 극복하며 최전선에서 정치 여정을 이어온 그가 독일 역대 최다선 의원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의 유족으로는 배우자 잉게보그와 네 자녀가 있다.
고인이 세상을 등진 시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유럽연합(EU)의 설계자이며 산파 격인 자크 들로르 전 유럽집행위 의장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그러고 보니 27일은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랜드마크인 에펠탑 설계자인 귀스타브 에펠 사망 100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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