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는 식민지때 용어… 제주방언 ‘좀녀’로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제주해녀는 식민지때 용어… 제주방언 ‘좀녀’로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4-03-21 11:15
수정 2024-03-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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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마(海女)에서 온 말로 유네스코 등재 아쉬워
해녀들의 노래도 일본 군가인 행진곡에 우리가사를 붙여
학교들의 교가도 일본 군가에 영향 받아 만든 경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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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20일 제주돌문화공원 누보카페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20일 제주돌문화공원 누보카페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 해녀(濟州 海女)란 단어는 식민지주의(콜로니얼리즘)적인 용어여서 매우 불쾌합니다. 물건너는 땅이라는 제주는 섬사람들의 시각이 아니라 육지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질하던 사람들이 원래 쓰던 ‘좀녀(혹은 잠녀)’라는 말을 존중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가 외갓댁인 전경수(75)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0일 제주돌문화공원 누보카페에서 저서 ‘울릉도 오딧세이’와 관련 북토크를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전 교수는 “쓰고 있던 좀녀 대신 일본에서 들어온 해녀(海女·아마)라는 말로 대체된 게 아쉽다”며 “특히 유네스코 등재때 좀녀로 등재하려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한 것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북토크에 앞서 그는 누보 갤러리 대표 송정희씨가 미리 준비해 놓은 수십권의 책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권의 책을 펴냈지만, 일일이 이렇게 사인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며 미소 지었다. 이날 어떻게 알았는지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항공권을 끊고 대전서 날아온 광팬도 있었다.

그는 “살림살이야말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일상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문제 혹은 정치적인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에서 일상의 삶이 축적되는 사람들의 역사가 더 중요하다“면서 “제주의 어느 빈집의 살림살이, 폐촌의 부엌을 들여다 보게 되면 많은 이야기들이 서려있다”고 했다. ‘울릉도 오딧세이’는 그가 2006년부터 약 15년간 울릉도를 현지 답사하며 기록한 오딧세이적 ‘살림살이의 보고서’인 이유라고 귀띔했다.

전 교수는 이날 “울릉도와 독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학포라는 동네의 살림살이 중에 살림터로 살아왔던 가지(강치, 바다사자, 바다코끼리라고도 불림)라는 포유류가 제국주의 시대에 횡행했던 식민지배의 침탈 역사로 멸종에 이르게 됐다”면서 “러일전쟁때 1년에 1만마리 이상 잡아가 바칠 정도여서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침략적 이데올로기가 배어있는 지정학적 사상을 배격할수밖에 없어 지정학 대신에 해정학(oceopolitics)을 울릉도에 적용하게 됐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해역은 지역과는 다르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세계관, 즉 삶의 방식이 현재 다툼의 대상이 된 해역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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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75)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20일 제주돌문화공원 누보카페에서 열리는 북토크 하기 전에 저서 ‘울릉도 오딧세이’에 사인을 해주다가 웃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전경수(75)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20일 제주돌문화공원 누보카페에서 열리는 북토크 하기 전에 저서 ‘울릉도 오딧세이’에 사인을 해주다가 웃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특히 “영국군이 거문도에서 스케치한 그림을 보면 산들이 거의 민둥산이다. 배를 지으려면 상당히 큰 목재들이 필요해 주민들은 목재를 구하기 위해 수백㎞ 떨어진 울릉도까지 항해했다”면서 “거문도 사람들은 울릉도를 선박 건조용 목재를 획득하는 일종의 식민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조선정부의 울릉도에 대한 오래된 공도정책(1417~1883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의 공도정책으로 울릉도에 정식 거주하는 주민들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심지어 정부는 몇년에 한번씩 수토관을 파견해 울릉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체포해 육지로 데리고 나왔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원나라가 탐라총관부(1275~1384년)을 설치하고 제주도를 100년 이상 지배했을 당시 제주의 땅은 원시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들판이나 오름들이 풀이 자라는 목장지대로 변하게 된 이유와도 비슷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유목민인 몽고인들이 말들을 들판에 풀어놔 원시림이었을 땅들이 목초지대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이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문효진 사운드오브제주대표는 “우도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를 찾다가 해녀들이 부르는 노래를 구술로 담아 악보화했는데 알고보니 일본 노래였다”면서 그 곡을 실제 연주한 뒤 “일제강점기 유행가에 가사를 붙여 해녀들이 항쟁노래를 불러 놀랐지만 해녀들의 항쟁이 방점이다”고 전했다. 이에 전 교수는 “당시 일본 군가들이 대부분 행진곡 형태를 띠는데 교가를 만들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고 힘을 보탰다.

또한 전 교수는 “해녀들이 3000명대가 붕괴되고 있다는 등의 통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면서 “통계는 일종의 미니스커트다. 그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되며 통계에 집착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전체를 바라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에스노그래피는 인류학의 기초를 구성하며 삶에 대한 관찰과 문답을 담은 일차 보고 자료를 말한다”며 “에스노그래피는 삶에서 출발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 에스노그래피다. 우리는 에스노그래피가 관리의 매뉴얼이 아니라 공생의 텍스트가 되기를 갈망한다. 관리는 수단이요, 공생은 목적이다. 관리란 근본적으로 식민주의적 발상에 기초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려는 이유는 공생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 교수는 한국문화인류학회장, 제주학회장, 근대서지학회장을 지냈으며 일본 규슈대학, 야마구치대학, 가고시마대학, 가나가와대학, 오키나와 국제대학 방문교수와 중국 구이저우대학, 미국 예일대학 등에서도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2017년엔 독도평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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