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김무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420쪽/1만 8500원
1926년 10월 30일 어느 미국인 부부가 일본 교토로 휴가 여행을 왔다. 부부는 가을 정취가 깃든 고도의 풍광에 매료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평범한 관광이었던 이 여정은 19년 뒤 세계사의 한 장면을 뒤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남자의 이름은 헨리 L 스팀슨.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5년 미 육군 장교로 임명된 그는 원자폭탄 표적 선정위원회가 교토를 첫 번째 후보지로 정하자 “내 승인 없이 절대로 폭탄을 투하해서는 안 되는 도시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교토”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교토는 결국 대상에서 빠졌고 대신 히로시마가 원폭의 첫 피해 지역이 됐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달린 중대사가 장관의 우연한 휴가 경험에 좌우됐다는 사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대다수 사람에겐 어이없고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국제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상은 우발적인 사건의 연쇄 작용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단언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데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알고 패턴을 파악하면 현실을 통제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은 기술문명과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허상일 뿐 세상은 무작위적인 우연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책은 나비 효과, 카오스 이론 등 복잡계 이론의 맥락에서 역사, 철학, 정치학, 경제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방대하게 짚어 낸다.
우연과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는 쓸모없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는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며 “모든 존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과 행위가 중요하다”고 결론짓는다.
2024-10-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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