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 6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에 이날 폐막하는 ‘이건희 컬렉션:한국미술명작 전시회’를 관람하려는 시민 400여명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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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지음/김영사/384쪽/3만 3800원
‘세기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새로 썼다. 미술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까지 전시장으로 끌어들이며 2021년 기증 이후 200만명에 가까운 인파를 모으며 전국적으로 미술 관람 문화를 확산시켰다.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이어지며 기증에 대한 인식과 실천 문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전국 순회 전시에 이어 2025년 하반기부터는 미국, 영국 미술관으로 진출하며 세계 관람객과 교감할 준비가 한창인 이건희 컬렉션. 그 전모와 내막에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해주는 책이 펴나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 3주기를 맞아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장 입구에 이 선대회장의 사진과 어록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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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 이건희, ‘좋은 물건’이면 값 따지지 않고 사들여
‘김일성 컬렉션’ 될 뻔한 화조구자도 사진만 보고 결정
이건희미술관, 송현동 부지 대신 용산 가족공원 적합”2만 3000여점의 대규모 기증품 가운데 국보와 보물만 60건에 이를 정도로 이건희 컬렉션은 ‘초일류’를 고집스럽게 지향하고 관철해 나갔다. 저자는 명품이라도 비싼 작품은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은 이병철 창업회장과 달리 이 선대회장은 ‘좋은 물건’이라면 값을 따지지 않고 빠르게 결정하고 사들여 ‘특급 명품’이 집약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를 간파한 저자가 명품만 보면 무조건 구매하도록 권하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이종선 씨는 너무 많이 사는 게 흠”이라고 할 정도였다.
국보급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으겠다는 ‘국보 100점 프로젝트’는 1등 철학으로 삼성의 도약을 일궜듯, 컬렉션도 초일류로 완성하고자 했던 수집가 이건희의 면모를 압축하는 예다. 상대적으로 중국 미술에 관심이 덜했던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고한다. 냉정해보이는 외면과 달리 속정이 깊어 미술계나 학계 인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전후 사정을 묻지도 않고 나서서 해결해줬다는 일화도 전한다.
조선 초기 화가 이암의 화조구자도, 보물, 조선 시대(16세기), 종이에 담채, 86x44.9㎝. 이건희 컬렉션.
가야 금관과 청자를 지극히 아꼈던 부친과 달리 30대부터 백자를 수집하며 감정을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른 그의 취향에 대해서는 말수 적은 성정이 덤덤한 백자와 잘 맞은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백자 달항아리, 국보, 조선시대(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높이 44㎝, 몸통 지름 42㎝. 이건희 컬렉션.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 표지.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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