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오수완 지음/문학과지성사/222쪽/1만 4000원
허무가 가득한 ‘종말의 시대’축구 흔적 찾아 여행을 떠나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태운 버스가 행진하자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 소설 ‘켄’은 종말로 치닫는 세상에서 축구에 대한 기억을 찾아 나선 주인공의 여정을 그렸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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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의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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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고 나면 뒤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표지에 적힌 ‘축구와 종말에 관한 조용한 이야기’라는 부제도 궁금증을 키운다. 도대체 축구와 종말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소설은 카타르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 준 축구선수 메시와 같은 실력으로 켄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이 아니다. 소설은 켄이 여행을 떠나고(1부) 사람들을 만나 사연을 듣고(2부), 집으로 돌아오는(3부) 내용으로 구성됐다.
사람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축구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한가운데 보초병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다 무언가를 깨닫고 사라졌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자신이 축구팀 골키퍼였을 때 공을 막지 못해 팀이 졌던 사실을 죽을 때까지 떠올린다고 했다. 축구를 하다 부상당해 고생하는 어떤 이는 폭력은 돌고 돈다고 강조한다. 돌발적인 우울증을 겪는 한 박사는 자신이 아스널의 팬이었음을 알게 된 뒤 병이 나았다. 축구공의 장인은 켄이 길을 떠날 때 가져온 낡은 공의 장례식을 치르며 작별의 민요를 불러 준다.
오수완 작가
모자이크의 끝, 세계의 끝에 다다르고 나서 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여정을 함께한 독자라면 축구, 혹은 다른 무언가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될 법하다. 각자의 경험은 모두 제각각이고, 인생이란 희로애락 조각들의 연속이다.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모자이크의 조각을 찾아보고 모아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여정을 함께한 독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당신에게도 당신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꿈이 있을 것이다.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꿈이. 그 꿈이 당신을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뛰어오르도록 한다면야. 혹은 그저 지칠 때까지 공을 쫓으며 달리도록 만들 뿐이라면야.”(221쪽)
2022-12-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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