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거기서 거기지” 삶, 그 특별한 이야기를 터놓다

“다 거기서 거기지” 삶, 그 특별한 이야기를 터놓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2-12-01 17:30
수정 2022-12-0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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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선임 지음/다산책방/320쪽/1만 5000원

언니 이름으로 100년 산 연화

갑작스러운 재해로 죽은 이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8편

작가 “어디에 있든 한 사람도,
한 마리도 춥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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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산 할머니치고 이름이 세련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서연화. 친구라고는 자신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사회복지사 유진과 아흔여섯 살 된 미역국집 주인 고말순 그리고 트랜지스터라디오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연화는 라디오에서 들은 남의 인생을 주워섬기고 듣는 이들은 어디서 들어 본 얘기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 연화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라고 눙친다. 그렇지만 연화는 이름도 나이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태어나고 몇 달 뒤 죽은 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을 갖고 한평생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에게는 뻔한 얘기 같지만 태어난 이후 자기 자신으로 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연화의 삶은 ‘거기서 거기’라고 퉁칠 수 없는 것이다.

2018년 단편소설 ‘귓속말’로 등단한 작가가 낸 첫 소설집의 서두를 장식한 단편 ‘요카타’는 깊은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가진 이웃집 할머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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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단편 ‘구부린 마음’은 답답한 회사 분위기 때문에 반차를 내고 광장을 지나던 ‘나’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길게 늘어선 줄 한쪽에서 자신에게 손짓하는 낯선 여자를 보면서 시작된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도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애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홀린 듯 줄을 대신 서 준다. 5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 나는 이번엔 이전보다 오래 다니고 있지만 또다시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자리 없이 떠돌아 본 기억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애썼던 기억이 나를 이 줄에 서 있게 한다.

책 마지막에 실린 ‘몰려오는 것들’은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바닷물에 쓸려 가 버린 상황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갑작스러운 재해로 죽은 이에게 무덤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망각이 강요되는 현실이 등장한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 규명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이태원 참사를 연상케 한다.

8편에 등장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쓸모없는 일들도 그저 삶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실제 우리네 삶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 주고 있다.

“이미 잃어버렸다 해도 잃지 않았다고 미련하게 믿으며 잃어버리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쓰고 싶다, 계속 쓰겠다, 다시 쓰겠다, 애쓰겠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 스스로의 다짐일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건넨 당부의 말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완전히 죽는 것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사라질 때”라는 영화 ‘코코’의 대사처럼 작가 역시 평범한 삶이라도 누군가 돌아보고 믿어 주고 기억해 준다면 그 존재는 영원히 지속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디에 있든 한 사람도, 한 마리도 춥지 않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속삭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어딘가엔 상실의 아픔으로 겨울 추위보다 더 차가운 냉기를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들 모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2022-12-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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