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 알았다면 그 골목, 군중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날,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 알았다면 그 골목, 군중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까

임병선 기자
입력 2022-11-17 17:36
수정 2022-11-1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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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협력한다/디르크 브로크만 지음/강민경 옮김/알레/328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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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뒤끝에 독일 물리학자 디르크 헬빙과 그가 만든 수학적·물리학적 모델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힘’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었을까. 헬빙은 2006년 사우디아라비아 미나의 364명 압사와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의 러브퍼레이드 참사, 서울 이태원에서 158명이 소중한 우주를 빼앗긴 일 등을 군중 난류(crowd turbulence)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베를린 훔볼트대학 생물학연구소 교수인 디르크 브로크만이 보기에 군중 난류를 설명하기에 유용한 것이 찌르레기와 청어, 군대개미 등 복잡한 집단 움직임 연구다. 이 책은 복잡계 과학을 활용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위기를 설명하려 하는데 번역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10·29 참사가 일어났을 테니 공교롭다.

헬빙은 커다란 출입구 하나보다 작은 출입구 둘이 나란히 있을 때 사람들이 대피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놀랍게도 비상구에서 1m 떨어진 곳에 장애물을 세워둘 때 대피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복잡계 과학은 겉으로 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예를 들어 대형산불과 전염병을, 야생동물 생존과 포퓰리즘을 연결 짓는 작업 등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 골프나 치고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도 2020년 대선에서 7000만명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자동증(automatism), 즉 집단의 본능을 따르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우리 생태계가 보이지 않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재앙에 더 철저히 대비하려면 모든 것을 연결해 생각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자연은 적자생존 방식의 경쟁이 아닌 협력에 초점을 맞춰 진화해 왔다고 본다.

책 맨 앞에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경고가 섬뜩하다. “지구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인간의 교만함이 우습다.(중략) 사실상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2022-11-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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