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없었던 1000년, 세계는 이미 연결됐다

콜럼버스 없었던 1000년, 세계는 이미 연결됐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2-04-14 17:34
수정 2022-04-1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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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발레리 한센 지음/이순호 옮김/민음사/488쪽/2만 7000원

지리상 발견 이전 ‘세계 단절’ 반박
1181년 伊 대학살은 세계화 폐해
中요나라 공주 부장품 발트해産
서구 중심의 주류 역사관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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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는 바이킹의 모습을 그린 노르웨이 화가 한스 달(1849~1937)의 상상화. 민음사 제공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는 바이킹의 모습을 그린 노르웨이 화가 한스 달(1849~1937)의 상상화.
민음사 제공
중세 유럽의 바이킹(노르드인)이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노르드인이 압도적 무기를 지닌 콜럼버스와 달리 원주민의 격렬한 저항에 못 이겨 영구 정착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의미 없는 사건에 불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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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년 당시 세계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이슬람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그린 세계지도. 이슬람권 표준 관례대로 남쪽 지역을 위에 두어 아프리카는 지중해와 유럽 위쪽에 나타나 있다.  민음사 제공
1154년 당시 세계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이슬람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그린 세계지도. 이슬람권 표준 관례대로 남쪽 지역을 위에 두어 아프리카는 지중해와 유럽 위쪽에 나타나 있다.
민음사 제공
세계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발레리 한센 미국 예일대 교수는 신간 ‘1000년’에서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가 연결됐다는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도전하고, 오늘날 세계의 틀은 기원후 1000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1000년을 전후한 노르드인의 탐험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대서양 양쪽의 교역망이 연결됨으로써 ‘세계화’가 시작된 중요한 기점이다. 고대 마야인의 벽화에 노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노르드인의 배가 등장하고, 15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이전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미 남북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정교한 교역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를 찾아온 유럽인이 새로운 교역망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이슬람권과 아프리카에서 번성하고 있던 금 무역과 노예무역에 추가로 참여했을 뿐이다.

저자가 보여 주는 1000년 당시 인류의 삶은 21세기와 놀랍게도 닮았다. 오늘날 종교 신자의 92%는 이때쯤 확립된 4대 종교(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중 한 가지를 믿고 있다. 1181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이 부를 독차지한 이탈리아 인 수천명을 학살했는데, 이는 세계화가 양극화로 말미암은 분노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당시 가장 세계화한 지역은 서구가 아닌 중국이었다. 요나라 황제의 손녀 진국공주는 1018년 사망할 때 6500㎞ 떨어진 발트해에서 나는 호박 원석으로 된 부장품과 같이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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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키예프 루스 블라미디르 1세의 동상. 블라디미르 1세는 988년 동방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서유럽과 다른 동유럽의 종교 블록을 형성했다. 민음사 제공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키예프 루스 블라미디르 1세의 동상. 블라디미르 1세는 988년 동방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서유럽과 다른 동유럽의 종교 블록을 형성했다.
민음사 제공
특히 종교는 국가 간 교류를 원활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핵심 도구였다. 군주들은 어느 종교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고 강력한 동맹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저울질했다. 예컨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뿌리로 삼고 있는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는 전통 신앙을 대체할 종교로 유대교, 이슬람, 가톨릭 등을 모두 검토했으나 당시 비잔틴제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콘스탄티노플 대성당 등 여러 조건에 매료돼 동방정교로 개종했다. 이는 오늘날 동서 유럽이 종교적 차이로 갈리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중앙아시아 이슬람권의 팽창도 같은 시기에 이뤄져 사람들은 이때부터 자신을 전 세계적 종교 블록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됐다.

저자는 15~16세기 유럽인이 ‘대항해 시대’를 열지 않았더라도 세계무역은 활발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지역에서 더 많은 물건이 만들어지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인들은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18~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를 선도했다. 하지만 중국은 산업혁명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영국만큼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뿐이다.

저자는 1000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은 생소함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새것에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 인구가 2억 5000만명에 불과했던 1000년과 80억명에 가까운 현재 세계를 단순 비교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세계가 단절돼 있었다는 편견을 반박하고, 세계화의 주도권이 어느 특정한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이 반갑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컬처’의 힘으로 우리도 세계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적 치기 때문일까.

2022-04-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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