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기 베인/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구원 옮김/코호북스/596쪽/1만 6500원
자존심 강한 여인 애그니스 베인은 가학적이고 이기적인 바람둥이 남편 셕이 떠나면서 외진 탄광촌에 아이 셋과 버려진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주민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수당에 의존해 살아가는 이곳에서 애그니스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잊고자 점차 술에 의존하며 자기파괴적 행위를 일삼는다. 애그니스의 곁을 지키던 아이들도 한 명씩 떠나간다. 하지만 남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막내아들 셔기는 자신이 노력하면 어머니를 알코올중독에서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남자다움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셔기가 겪는 폭력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주입하는 정신적 폭력이다. 아들이 다른 소년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용기를 주는 애그니스의 사랑은 셔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작가는 인간의 추한 이면을 폭로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어머니와 아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어두운 현실을 헤쳐 나가는 숭고한 인간미와 희망을 제시한다. 특히 범죄·중독·가난을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사회악으로 치부한 대처리즘에 맞서 환경·시대적 요인을 강조한다. 셔기의 절망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과 애그니스의 용감한 투쟁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공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욕망의 파괴력과 가족에 대한 성찰이 가슴 절절하게 슬프지만 희망의 여운을 남긴다”는 부커상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무엇보다 적확하게 느껴진다.
2021-12-17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