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교포 작가의 인종차별 폭로
이민자 사회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30년간 달라진 게 없는 美사회 비판
‘상처 치유 위한 소통’ 메시지 강렬
1992년
1992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사진)과 지난 24일(현지시간) 내슈빌에서 행진하는 흑인들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30년이란 시차에도 사회적 갈등을 촉발한 인종차별은 그대로다. 재미 교포 작가 스테프 차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한인과 흑인 가정의 시선으로 그 사회를 바라본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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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흑인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분노한 흑인들이 한인 상점을 약탈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왜 한인 상점이었나. 이 답을 알려면 1년 전 일을 돌아봐야 한다. 한국계 상점 주인 두순자씨는 열다섯 살 흑인 소녀를 강도로 오인해 목숨을 빼앗았지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흑인 사회에선 두 사건이 하나가 되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한인 이민자들에게는 치열한 생존이 미국 주류사회 편입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억척스러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외받는 흑인들에겐 ‘어글리 코리안’으로 비칠 수도 있다.
2021년
1992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과 지난 24일(현지시간) 내슈빌에서 행진하는 흑인들의 모습(사진)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30년이란 시차에도 사회적 갈등을 촉발한 인종차별은 그대로다. 재미 교포 작가 스테프 차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한인과 흑인 가정의 시선으로 그 사회를 바라본다. 내슈빌 AFP 연합뉴스
LA 한인 마켓에서 약사로 일하는 교포 그레이스 박은 최근 경찰에 의해 사망한 10대 흑인 소년 추모 열기에 불편해하는 부모를 보고 의아해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정체 모를 괴한의 총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28년 전 어머니가 한 흑인 소녀를 사살했던 일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어릴 때 누나 에이바를 눈앞에서 잃은 숀은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사촌 레이를 대신해 남은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왔지만,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레이가 불안하기만 하다. 독자는 그레이스의 어머니에게 총을 쏜 범인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증을 품으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재미 교포 작가 스테프 차(한국명 차영애)
작가 홈페이지 캡쳐
작가 홈페이지 캡쳐
그럼에도 작가는 모든 역경에 저항하는 인간 존엄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한 짓을 용서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용서해요. (중략)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어떤지 저도 아니까요”(382쪽)라는 숀의 이모에게서 화해를 통한 변혁의 가능성을 엿본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인종 차이를 넘어 소통해야 한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소설을 덮고도 곱씹게 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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