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온라인 친정부 여론 형성
종교적 애국주의 빠진 고학력 집단
도덕적 우세·진리 내세운 ‘자칭 영웅’
“한국, 中문화 도용” 등 험담 쏟아내
‘시진핑의 착한 아이들’ 이용될 수도
머리에 기름을 붓자 이성(理智)은 짐을 싸서 나가고, ‘애국(愛國)!’만 외치는 분노청년(憤靑)이 된다. 중국 일간 영자신문인 중국일보 2016년 7월 25일자 온라인판에 중국의 분노청년을 표현한 ‘기이한 애국’이란 만평이 실렸다.
푸른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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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모델은 우물에 처넣고, 여자 모델은 강간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죽여야 한다.” 200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수영복 디자인대회 당시 중국의 인터넷을 달군 댓글들이다. 오성홍기를 새겨넣은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하자 이 소동이 빚어졌다. 국기로 “사사로운 곳을 감싼 것”이 그리 중한 죄일까.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은 중국의 애국주의가 길러 낸 ‘분노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에서 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가 2000년대 이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중국지상주의 현상을 살피고, 그 뿌리와 배경을 분석했다.
중국 애국주의의 발호를 이끄는 분노청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친정부 청년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인적 구성이나 시기 등에 따라 분노청년, 자간오, 소분홍 등으로 구분되긴 하지만, 책에선 현 인터넷 최강 세력인 소분홍과 분노청년이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소분홍(小粉紅)은 ‘어린(小) 여성(粉)들이 붉은 마음(紅)으로 당과 국가, 지도자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여성 위주였던 초창기와 달리 1990년 이후 출생한 고학력 남성 회원들이 월등히 많다. 73% 정도가 대학 졸업자이고, 그중 대학원 이상의 회원도 36%에 이른다. 무학자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이들이 섞여 있던 분노청년과 달리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 집단이다.
분노청년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영웅이라 여긴다. 정치적 올바름, 도덕적 우세, 진리를 대표하는 존재다. 이들에게 국가는 종교다. 애국의 깃발만 내걸면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고, ‘애국 무죄’ 원칙에 따라 면책된다. 욕하고 때려도 ‘선진적’이다. 애국심이 건달들의 피난처가 됐다고 지적하는 이들조차 분노청년만 탓할 뿐 이들을 막후 조종하는 권력자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저자는 이들을 홍위병과 일란성 쌍둥이로 본다. 마오쩌둥이 “착한 아이들”이라 부른 홍위병처럼 시진핑 국가주석의 ‘착한 아이들’로 쓰일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한국에 대한 공격도 늘고 있다. 2016년 소분홍이 외국에 대해 공격을 퍼부은 횟수는 14회. 이 가운데 한국은 5회에 달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일본은 1회였다. 우리도 분노청년처럼 중국인에게 욕을 퍼붓고 싸워야 할까, 아니면 우리끼리 욕하고 싸우느라 이를 잊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차분하게 대비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까.
아쉽지만 책은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문제를 들춰내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멈춘다. 저자는 “시 주석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애국주의에 세뇌된 분노청년은 자력으로 폭주를 멈추지 못한다”며 “이제 한국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 중국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결국 해법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21-03-2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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