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김유담 지음
창비/192쪽/1만 4000원
지난해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김유담 작가의 신작 소설 ‘이완의 자세’는 여탕을 무대 삼아 솔직한 담론을 풀어낸다. 때밀이인 엄마 오혜자의 고단한 인생 서사이자, 발가벗은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딸 유라의 성장 서사다. 대중목욕탕은 노동의 피로를 몸에 달고 사는 여자들이 계급장을 떼고 알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엄연히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여탕에서는 피부와 몸매 관리, 재테크, 자식 교육에 능한 여자들의 입김이 세듯 사회 계층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상인 번영회 회장님은 암으로 한쪽 유방을 절제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여탕을 드나든다. 무용학원 윤 원장은 엄마와 달리 연애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라고 조언한다. 단지 여탕에 국한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면 만날 것 같은 인물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실패를 보면서 목표를 이루려 발버둥치지만 쉽지 않았던 과거도 떠올리며 공감한다.
작가는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속 깊이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고 고백했다. 엄마가 한 말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165쪽)는 치열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다. 경직된 몸을 뜨거운 탕에서 이완하듯 좌절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며,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해도 ‘충분한 나’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1-1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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