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관통한 1세대 스타 PD의 비망록

신군부 관통한 1세대 스타 PD의 비망록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9-10-31 17:44
수정 2019-11-01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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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고석만 지음/창비/396쪽/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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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신군부가 3S(Sports, Screen, Sex) 정책으로 국민을 우민화하려던 시절. MBC가 중심이 돼 프로야구단을 창설하고, VTR이 가정에 보급되면서 포르노 필름이 기승을 부렸다. 자극적인 기사들로 가득 찬 황색 언론도 범람했다.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니 정론은 숨죽이고 가십이 판을 쳤다. 그렇게 엄혹했던 시절에 권력과 맞서며 드라마를 제작해 온 이가 있다. ‘1세대 스타 PD’로 꼽히는 고석만 PD다.

새책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는 드라마 ‘수사반장’, ‘제1공화국’, ‘땅’ 등으로 1980~90년대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던 고 PD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천생 연출가다. 밋밋한 자서전은 성에 안 찼던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으로 이끌려는 ‘연출가적 기교’를 책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다.

책은 숱한 억압과 중단의 역사로 점철됐다. 땅 투기를 조명한 드라마 ‘땅’은 첫 회가 방영되자마자 청와대에서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되는 역사를 남겼다. 최초의 정치드라마로 꼽히는 ‘제1공화국’을 만들 때는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당대 재벌들을 소환했던 ‘야망의 25시’는 “정경유착의 힘” 탓에 조기 종영되는 비운을 겪었다.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일대기를 담아내려던 시도는 기획 단계에서 좌절되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 방송심의위원회 등에 참여해 권력의 손을 들어줬던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옷깃을 여미는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책이 묵직한 주제의식만 담고 있지는 않다. 지각 버릇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했던 ‘영원한 수사반장’ 최불암 이야기, 황당한 간계로 갓 데뷔한 탤런트 이미영, 정애리 등과 저자와의 스캔들을 ‘기획’했던 일부 매체의 기자 이야기 등이 맛깔스러운 조미료 노릇을 한다. 저자가 드라마 PD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도 담겼다. 전북 전주의 ‘할리우드 키즈’가 MBC에 입사해 열정을 불사른 시절, 프리랜서 시절과 드라마 PD 이후의 삶 등이 소개됐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9-11-01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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