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순이·차순이·공순이…가난이 낳은 이름

식순이·차순이·공순이…가난이 낳은 이름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9-09-05 17:34
수정 2019-09-06 02:0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1965년 5월 경찰의 외설서적 단속에 걸려 압수된 소설 ‘식모’ 표지. 당시 식모를 보던 인식의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책과함께 제공
1965년 5월 경찰의 외설서적 단속에 걸려 압수된 소설 ‘식모’ 표지. 당시 식모를 보던 인식의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책과함께 제공
삼순이-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정찬일 지음/책과함께/524쪽/2만 5000원

“옆에 앉아 밀어붙이더니/ 슬금슬금 더듬어 온다/ 서자니 다리 아프고/ 옆에 앉자니 징그러워/ 엉거주춤 걸터앉았더니/ 엉덩이 툭툭 치며 엉큼하게 쳐다보다/…/ 애 어른 몰라보고 되는 대로 주무르는/ 밝혀대는 헷손질이니 기가 막히다/ 입술은 깨물고 가슴은 분노를 참다가/…/ 자학으로 가슴을 눌러 통곡해 쓰러진다”
이미지 확대
직업소개소를 찾은 이른바 ‘조선어멈’들. 매일신보 1938년 5월 3일자 지면에 실린 사진이다. ‘조선어멈’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민족적 멸시를 담아 부르던 표현이었지만 조선 사람도 함께 쓸만큼 ‘식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책과함께 제공
직업소개소를 찾은 이른바 ‘조선어멈’들. 매일신보 1938년 5월 3일자 지면에 실린 사진이다. ‘조선어멈’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민족적 멸시를 담아 부르던 표현이었지만 조선 사람도 함께 쓸만큼 ‘식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책과함께 제공
최명자 시인의 시 ‘술주정뱅이’(1985)의 한 대목이다. 실제 버스안내양이었던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당장 쇠고랑을 찰 일이지만 1960~70년대엔 만원 버스에서 안내양의 몸을 더듬는 게 그리 큰 허물이 아니었던 듯하다.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주무르고 헛손질을 해댔다니 말이다. 어디 이들뿐이랴. 버스안내양 이전엔 ‘식모’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고, 이후에는 ‘여공’들이 그랬다.
이미지 확대
새 책 ‘삼순이’는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근현대 삶의 현장을 질주했던, 그러다 홀연히 기억 속에서 사라진 세 직군 여성들의 질곡을 들춰내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식모를 ‘식순이’로, 버스안내양과 여공은 각각 ‘차순이’, ‘공순이’로 불렀다. ‘삼순이’는 이들을 아우르는 단어다.
이미지 확대
몸수색 당하는 버스안내양. 영화 ‘도시로 간 처녀’(1981)의 한 장면이다. 1960~70년대엔 이른바 ‘삥땅’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안내양을 숙직실 등으로 불러 알몸으로 ‘검신’을 받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책과함께 제공
몸수색 당하는 버스안내양. 영화 ‘도시로 간 처녀’(1981)의 한 장면이다. 1960~70년대엔 이른바 ‘삥땅’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안내양을 숙직실 등으로 불러 알몸으로 ‘검신’을 받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책과함께 제공
책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멈’이라고도 불렸던 식순이에서 출발해 차순이, 공순이 순서로 흐른다. 서로 다른 이름이었지만, 그 호칭 밑에는 늘 공통적인 정서가 깔려 있었다. 업신여김과 성적 희롱의 대상.
이미지 확대
만원버스에 매달린 버스안내양의 아슬아슬한 모습. 문을 닫지 못하고 출발하는 이른바 ‘개문발차’ 탓에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안내양도 있었다. 책과함께 제공
만원버스에 매달린 버스안내양의 아슬아슬한 모습. 문을 닫지 못하고 출발하는 이른바 ‘개문발차’ 탓에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안내양도 있었다.
책과함께 제공
다시 버스안내양 이야기로 돌아가자. 버스는 서울 도심을 질주했지만 안내양은 서울 사람이 아니었다. 너나없이 빈곤했던 시절 많은 소녀들이 “한 입 덜기의 최전선”으로 내몰렸고, 일자리에 목마른 이들은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 개찰구에서 나온 상경 소녀들은 알을 깨고 바다로 향하는 새끼 거북이와 같은 처지”였다. 많은 상경 소녀들이 사악한 혓바닥에 속아 윤락업소에 넘겨졌고, 버스회사나 공장 등에 취직하는 건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였다.

버스안내양의 역사는 뜻밖에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오른다. 1933년 6월 대구의 부영버스는 여성 차장을 뽑는다는 공고를 낸다. 남성 차장이 대세였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을 텐데,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산술과 구술 등 평소 치렀던 시험과목 외에 또 하나의 선발 기준이다. 바로 ‘외모´였다. 모집 공고문에조차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이’라고 명시했고 이력서에 상반신 사진도 첨부해야 했다.

남성 차장을 급속도로 대체한 버스안내양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꽤 이중적이었다. 동정심을 보내는 이도 있었지만, 요금 시비와 제시간 발차 요구 등 불만을 쏟아내는 이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차순이’는 철저히 을이었다. 손님 대 종업원, 어른 대 어린 것, 남자 대 여자, 배운 것 대 못 배운 것의 대립 구조에서 버스안내양은 늘 후자였다.
이미지 확대
퇴근하는 여공들을 촬영한 옛 사진. 당시 세간의 인식은 이들을 ‘공순이’라 부르며 얕잡아 부르기 일쑤였다. 책과함께 제공
퇴근하는 여공들을 촬영한 옛 사진. 당시 세간의 인식은 이들을 ‘공순이’라 부르며 얕잡아 부르기 일쑤였다.
책과함께 제공
만원 버스에서 벌어지는 가벼운 ‘터치’와 추행, 희롱 역시 일상이었다. 수치심에 몸을 떤 그들에게 돌아온 건 그러나 성 모럴이 희박하다는 편견이었다. 버스 요금을 가로채는, 이른바 ‘삥땅’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들은 ‘삥땅’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숙직실 등으로 불려가 ‘검신’이라는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알몸으로 검신을 받는 일도 드물지 않게 벌어졌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화려한 경제 개발의 그늘에서 그들(삼순이)은 이름과 달리 ‘순’하게 살 수 없었다”며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현대판 삼순이’ 동남아 이주 여성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9-09-06 3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설명절 임시공휴일 27일 or 31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설 연휴 전날인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내수 경기 진작과 관광 활성화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며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에 일부 반발이 제기됐다.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경우 많은 기혼 여성들의 명절 가사 노동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내수진작을 위한 임시공휴일은 27일보타 31일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설명절 임시공휴일 27일과 31일 여러분의…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적합하다.
31일이 임시공휴일로 적합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