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박재명 지음/카시오페아/268쪽/1만 5000원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했던 장금자 할머니. 뒤늦게 한글을 배운 뒤엔 그동안 꺼렸던 곳도 당당하게 간다. 은행 문 열고 들어가 ‘카드 만들어 달라’며 자신 있게 서명하는 할머니. 그 모습을 떠올리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든다.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는 평균 나이 80세, 백발의 늦깎이 학생들 글 모음집이다. 저자인 박재명 교사가 지도하는 성인 문해 강좌에서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쓴 시와 일기, 편지와 생활문, 자서전 등 72편을 모으고, 해설을 붙였다.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동족상잔 비극 때문에, 자식 뒤치다꺼리 하느라 배움을 놓친 이들은 글을 모르는 게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평생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하지만 한글을 배운 뒤 이제 은행 일도 혼자 보고 동사무소에 가서 서명도 자신 있게 한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른다. 소설을 읽고 함께 문학기행을 떠나기도 한다. 못 배워 한스러웠던 자신과 화해하고, 따뜻한 글 한 편 건내지 못했던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며 편지도 써 본다.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누구의 글보다 아름답다. 앞으로도 자신 있게 사시길, 힘찬 응원을 보내 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9-07-26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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