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10년 만에 신작 ‘버선발 이야기’
작년 생사의 고비 넘기고서야 글 완성백기완(가운데) 통일문제연구소장
지난해 큰 고비를 넘겼다는 백발의 어르신은, 그러나 그 기백만은 여전했다. 느닷없이 처연한 노래를 읊기도 하고, 호통치듯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10년 만에 신작 ‘버선발 이야기’(오마이북)를 출간한 백기완(87) 통일문제연구소장 얘기다. 백 소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학림커피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버선발 이야기’는 백 소장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버선발’(맨발, 벗은 발)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땅 한 평 없이 바위 위에 집을 지어 엄마와 둘이 사는 버선발. ‘머슴의 자식은 머슴’이라는 법에 따라 주인집에서 잡으러 온 한겨울, 그는 엄마가 둘러준 저고리 하나 걸치고 머나먼 길을 떠난다. 그가 말하는 민중의 ‘한바탕’(서사)은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썩은 문명을 청산하고, 거짓을 깨고, 빼앗긴 자유와 희망을 되찾고, 착한 ‘벗나래’(세상)를 만드는 것이다.
백 소장이 책의 초고를 매듭지은 것은 2018년 봄 무렵이다. 그해 4월 백 소장은 심장 관상동맥 2개가 막혀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원고지였다. 그렇게 쓴 책을 읽으며 백 소장은 눈물이 났다. “나는 책을 쓰면서 늙어서 죽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도 있구나. 이것보다 더 멋있는 깨우침이 어딨냐 이 말이야.”
자리를 함께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말했다. “긴급조치 1호 때(1974) 선생님하고 같이 감옥에 들어가셨던 장준하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너희들 백기완이는 건드리지 말아라. 그 사람이 없어지면 우리 민족문화와 민중예술의 보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자체로 산 역사인 백 소장은 말했다. “책에서 던진 말뜸(문제제기)은 ‘내 거’는 ‘내 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관계 때문에 이웃하고도 말 안 해. 버선발 얘기는 오늘의 자본주의 문명에 반문명적, 반생명적인 것을 넘는 이론의 기초를 던질 수 있지 않겠나.” 백 소장이 목숨을 걸고 내놨다는 ‘버선발 이야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3-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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