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에 둘러싸인 조선… 강경했던 대외 정벌의 역사

열강에 둘러싸인 조선… 강경했던 대외 정벌의 역사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5-06-26 23:28
수정 2015-06-2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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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외정벌/임홍빈·유재성·서인한 지음/알마/464쪽/1만 9800원

삼국시대 이래 2000여년의 한국사에서 900~1000번 이상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외 출병’ 횟수는 얼마나 될까. 삼국시대 이외에는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데 드물긴 해도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원정’에 해당하는 군사작전이 있었고, 그 역사적 의미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책은 그간 중요도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조선의 대외 정벌에 대해 살피고 있다. 필자 셋이 3부로 주제를 나눠 조선 대외 정벌의 실체를 재구성하고, 재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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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대마도 정벌’은 세종 때의 왜구 토벌작전을 담고 있다. 조선의 기본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고, 이는 왜구에도 해당됐다. 이 때문에 조선 초기 왜구의 약탈이 극심했어도 조선의 회유정책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한데 세종 초기에 이르러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섰고 대마도 정벌까지 단행했다. 1부에선 이 같은 공세적 대처가 지니는 군사적 의의, 두 차례에 걸친 왜란과 병탄 그리고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살피고, 이에 담긴 역사적 함의를 짚어 본다.

2부 ‘보주 강 야인토벌’ 역시 세종 대에 이루어졌다. 야인, 즉 여진족은 숙신, 말갈 등으로 불리던 중국 동북지역의 민족이다. 개국 초기 조선의 북방은 세종의 개탄처럼 ‘야인들의 사냥터’였다. 여진족의 침탈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세종은 과감히 이들을 토벌하고 사군과 육진을 개척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진족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해 불씨를 남겼고, 이후 두 차례 호란으로 청과 군신지맹을 맺는 치욕을 겪게 된다. 이는 훗날 조선의 쇠망과 일제식민지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3부 ‘나선정벌’은 이전 두 차례의 대외 원정과 성격이 다르다. 우선 ‘나선’(러시아)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파병도 조선의 의지가 아니라 청의 강요로 이뤄졌다. 17세기 중반, 동진정책을 펼치던 제정러시아와 청나라는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군신 관계에 있던 조선으로서는 번번히 패하던 청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고 실제 청의 승리에 일조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은 ‘소중화’ 의식, ‘친명배금’ 정책 등에 매달려 갑론을박하고 있었지만, 냉혹한 국제관계는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힘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을 나선정벌은 여실히 보여 줬다. 저자들은 특히 효종의 ‘북벌’이란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닥쳐 좌절한 것은 우리가 여러 각도에서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5-06-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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