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작가들 필사집·글쓰기 노하우 담은 책 줄줄이… “작품 음미 자체가 힐링”
메마르고 팍팍한 세상에 단비가 돼 줄 시·소설 필사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현직 작가들의 글쓰기 노하우를 담은 책들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감성과 이성을 각각 충족하는 필사집과 글쓰기 강의 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글쓰기 문화의 저변을 넓혀갈지 주목된다.‘명시를 쓰다-마음이 맑아지는 좋은 시 필사’(사물을봄)는 김소월, 이육사, 윤동주, 김영랑, 한용운, 노천명, 정지용, 박인환, 백석, 이상 등 10명의 작품 53편을 가려 뽑았다. 페이지 왼쪽 면에 작품을 배치하고, 오른쪽 면에 엷은 밑줄을 그어 필사할 수 있도록 했다. 출판사 측은 “펜 끝이 종이에 문자를 그리는 느릿한 시간 속에서 작품에 내재돼 있지만 미처 포착하지 못한 것들이 우리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고 소개했다.
‘너의 시 나의 책-손글씨로 만드는 나의 첫 시집’(아르테)은 한국 문단의 젊은 시인 오은, 유희경, 박준, 송승언의 공동 시집이다. 시인들의 대표 시와 신작 시 60편이 수록돼 있다. ‘오늘 나’ ‘오늘 실수’ ‘오늘 분노’ 등 키워드에 따라 엮인 시를 빈자리에 필사하도록 했다. 오은 시인은 “시구를 적는 일, 나아가 시 한 편을 백지 위에 옮겨 적는 일은 시간을 잠시 멈추는 일,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 그리고 시의 화자와 스스로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가늠해 보는 일”이라며 “그 시간은 단순히 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뛰어넘어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의 첫 필사 노트’(새봄출판사)는 명작 소설을 베껴 쓰도록 구성한 책이다. 필사하며 읽는 한국현대문학 시리즈 첫 번째 권으로, 기자 지망생이나 작가 지망생이 가장 많이 필사하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상의 ‘날개’, 김유정의 ‘봄봄’ 등이 실려 있다.
현직 작가들은 자신들이나 동료 작가들의 글쓰기 경험을 토대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명랑 소설가는 공지영, 정유정, 정이현 등 현역 작가 11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창작 노하우를 담은 ‘작가의 글쓰기’(은행나무)를 냈다. 글의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지를 비롯해 글의 주제와 문체 결정 방법, 퇴고법 등 작가들의 실질적인 조언으로 가득하다. 등단 50년을 맞은 천양희 시인은 시인의 삶과 문학적 체험, 시 창작 강의를 담은 ‘첫 물음’(다산책방)을, ‘풀꽃’의 나태주 시인은 수년간 문학 강연을 다니며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뉘우치며 다짐한 내용을 엮은 ‘꿈꾸는 시인’(푸른길)을 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필사가 글쓰기 문화를 더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쓰다 보면 작품 속에 깊이 빠져들어 진실로 그 작품을 음미하고 이해하게 된다. 음미 자체가 곧 ‘힐링’(치유)이다. 감성 치유는 글쓰기 문화를 더 기름지고 풍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컬러링북처럼 글쓰기 시장이 폭넓게 형성돼 여가 문화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매김해 나가는 게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글쓰기·필사 책 출간 추세에 대해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고 진단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 읽고 쓰는 게 일상이 됐고, 짧은 글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하나의 흐름이 됐다. 글쓰기가 필수가 된 세상에서 남들보다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법이다. 필사책이나 글쓰기 책들은 이런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해 준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6-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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