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통합의 고려 500년史

공존·통합의 고려 500년史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5-05-15 18:14
수정 2015-05-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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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박종기 지음/휴머니스트/432쪽/2만 3000원

고려 500년사는 조선이나 삼국시대에 견줘 이해가 부족하고 덜 조명받는 게 사실이다. 몇몇 중국 학자들은 아예 왕건의 선조가 중국 회하 유역의 명문 거족이며, 왕건 또한 한족의 후예라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새 책 ‘고려사의 재발견’은 고려왕조의 기원설과 다민족 사회, 고려의 국교 등 잘못 알려진 사례들을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따져 바로잡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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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고려의 다원주의다. 고려왕조는 문화와 사상의 측면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이, 정치와 사회에서는 개방성과 역동성이 공존한 다원사회였다. 고려판 사회 통합정책이라 불리는 ‘본관제’가 한 예다. 태조 왕건은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합전쟁 때 협력한 지방 유력 계층에 그들의 거주지를 본관으로 삼아 성씨를 하사했다. 복주(福州)라는 지명을 안동으로 바꾸고, 승리에 기여한 신라 김행에게 안동이 본관인 권씨 성을 하사하는 식이다. 이를 군현 명칭의 개정과 함께 해당 지역의 토성을 정한다는 뜻에서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 한다.

토성분정은 단순히 지방세력에게 본관과 성씨를 부여하는 친족제도가 아니라 반세기 가까운 내란으로 분열된 지역과 민심을 통합하려는 사회통합 장치였다. 박씨와 김씨가 정치·경제를 독점했던 신라의 폐쇄적인 골품제를 무너뜨리고 새 질서를 수립하는 데 도움을 얻자는 뜻도 담겼다. 저자는 “21세기는 지식정보사회라는 새로운 역사 발전 단계로 진입하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기”라며 “약 1000년 전에 건국해 500년간 지속된 고려왕조의 역사에서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사상이 공존과 통합을 추구해 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은 부정확한 역사 바로잡기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예컨대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최소한 고려 시대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무려 고려 인구의 10%가 이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불교 국교론’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고려인들은 낭가사상과 풍수지리설도 받아들였다. 수신(修身)은 불교가 기반이었지만 통치는 유교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무능한 군주로 알려진 고려 의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흔히 술과 연희에 빠져 지내다 무신들에게 왕위를 뺏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환관과 측근 무신을 정치 파트너로 삼아 왕실의 중흥과 왕권 강화를 도모한 신성군주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5-05-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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