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신간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드로잉 연작 등 64편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문태준(45)이 돌아왔다. 관계, 죽음, 불교적 사유 등 등단 이후 20여년간 천착해오던 주제들을 더 짧고 선명한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불교적 사유가 도드라졌던 ‘먼 곳’ 이후 3년 만에 낸 여섯 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에서다.3년 만에 새 시집을 낸 문태준 시인은 “시 언어와 관계, 죽음의 문제에 집중했다”며 “대상과의 접점에서 시상들이 생기면 둘러대지 않고 짧고 선명하게 쓰려 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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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휴’(歸休)에선 인간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 ‘닭에게 마당을 꾸어 쓰는’ 데까지 시적 상상력이 미친다. 마당 주인을 집주인이 아니라 마당에서 사는 닭으로 설정,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관계임을 역설했다. 시인은 “우열이 없는 대등한 관계는 내 눈높이와 지위를 상대와 같은 위치에 두고 권위나 선입관을 버리고 상대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음·이별도 파고들었다.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다 어느 시점엔 사그라지는 존재의 속성을 들여다봤다. 임종을 앞둔 친척 병문안 때 보고 느꼈던 걸 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 대표적이다.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친척께선 호흡을 겨우 하고 계셨다. 그 모습에서 태어나는 순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가 있는 생명의 끝자락을 봤다. 몸이 갖고 있던 욕망의 불도 다 꺼지고 세속적 기준으로 가치 있다고 봤던 것들도 다 내려놓고 오롯이 하나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의 삶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 같다.”
등단 초기의 불교적인 시선도 여전히 예리하다.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퍼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여시·如是) 마애불을 보고 돌아와서 쓴 여시에선 자신의 본래 면목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여시는 여시아문(如是我聞·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여시로, ‘있는 그대로를 보면 그러하다’라는 의미다. “비바람에 깎이면서 모든 경계가 흐릿해진 마애불을 보면서 마애불의 불성을 떠올렸다. 형체는 사라지더라도 마애불이 본래 갖고 있는 면목, 이를테면 자비나 사랑의 마음이 내게도 있는지, 내 본래 면목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처서 외 9편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은 등단 21년을 돌아보며 “시 쓰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면서도 늘 두렵고 조심스럽다”고 했다. “시를 쓸 수 있는 조건들이 예민한 것 같다. 아무 때나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가 태어나는 조건들을 생활 속에서 유지해 가는 게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4-2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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