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 KKK? ‘노르마’가 선보인 종교 연출의 진수

오페라에 KKK? ‘노르마’가 선보인 종교 연출의 진수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3-11-01 06:58
수정 2023-11-0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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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노르마’ 무대 연출. 3500개의 거대한 십자가가 빼곡한 가운데 무대 위쪽에 가시 면류관 모양을 한 십자가들이 보인다. 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 ‘노르마’ 무대 연출. 3500개의 거대한 십자가가 빼곡한 가운데 무대 위쪽에 가시 면류관 모양을 한 십자가들이 보인다. 예술의전당 제공
십자가 3500개.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종교적이지만 곳곳에 전통 가톨릭 문화가 가득했다. 예술의전당이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26~29일 공연한 오페라 ‘노르마’가 한국 공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교 연출의 진수를 제대로 선보였다.

‘노르마’는 사랑을 위해 조국을 버린 여제사장 노르마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은 이야기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최고 수작으로 꼽히며 과거 이탈리아 지폐에 새겨진 유일한 오페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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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부활절에 볼 수 있는 카피로테. 스페인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미국 범죄조직인 쿠 클럭스 클랜(KKK) 복장으로 오해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스페인에서 부활절에 볼 수 있는 카피로테. 스페인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미국 범죄조직인 쿠 클럭스 클랜(KKK) 복장으로 오해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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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피로테. 위키피디아 제공
스페인 카피로테. 위키피디아 제공
‘노르마’ 연출가 알렉스 오예는 이 작품에 대해 “종교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실제로 모든 것을 관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과도하게 연출하고 싶은 유혹도, 전쟁 상황을 무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종교에 충실한 연출이었다. 요즘 오페라가 온갖 실험과 비틀기로 무장했지만 ‘노르마’는 구체적인 특정 문화에 천착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문화로서의 종교는 불교가 대세이고 가톨릭 문화 저변이 미약한 한국에서는 오예의 연출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생겼다. 일례로 스페인에서 부활절에 볼 수 있는 뾰족한 삼각형 모자인 ‘카피로테’를 미국의 범죄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의 복장으로 착각한 경우가 그렇다. 참회의 상징인 카피로테를 KKK가 차용했다고 전해지긴 해도 유럽의 종교문화가 가득한 무대에 미국 범죄단체의 속성을 끌어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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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에서 대형 향로가 움직이는 모습. 예술의전당 제공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에서 대형 향로가 움직이는 모습.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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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있는 거대한 향로. 보타푸메이로라고 부른다. 위키피디아 제공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있는 거대한 향로. 보타푸메이로라고 부른다. 위키피디아 제공
‘노르마’의 대표 아리아인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도 종교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다. 우선 무대 가운데 설치된 대형 향로는 많은 이의 로망으로 꼽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설치된 것을 가져왔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보타푸메이로’라 부르는 이 향로에 불을 피운 후 성직자들이 힘차게 밀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산티아고 성지순례의 꽃으로 꼽힌다. 제한된 시간에만 볼 수 있어 일정이 맞지 않으면 보기 어려워 그 가치가 더 귀하다.

‘노르마’에서는 한 사람이 등장해 향로를 왔다 갔다하게 밀고 사라지자 노르마가 ‘카스타 디바’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향로가 포물선을 그리는 모습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향로 미사를 연상케 했고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이 장면을 한없이 엄숙하게 만들었다. 향로 미사는 수많은 순례객이 꼬질꼬질한 상태로 들어와 악취가 가득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을 뿌리던 것에서 유래해 지금은 신성한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보타푸메이로의 존재와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겐 노래만 들릴 뿐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갈 장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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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 장치를 동원해 노르마를 높은 곳에 세웠다. 예술의전당 제공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 장치를 동원해 노르마를 높은 곳에 세웠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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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모 로셀리(1439~1507)의 ‘산상수훈’. 예수가 군중보다 높은 곳에 있다.
코시모 로셀리(1439~1507)의 ‘산상수훈’. 예수가 군중보다 높은 곳에 있다.
아리아를 부를 때 노르마가 높은 곳에 올라간 것도 종교적 연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류 대대로 제사장들은 군중보다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서 메시지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지금도 교황이 바티칸에서 군중 앞에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노르마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볼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기왕 높이는 거 시원하게 높이면서 제사장으로서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뒤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선 인물들을 세워두고, 옆에 향로를 왔다 가게 하는 등 작정하고 종교적 색채를 중첩한 덕에 색다른 매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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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마’ 1부에 사용된 소품은 기도할 때 쓰는 장궤틀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노르마’ 1부에 사용된 소품은 기도할 때 쓰는 장궤틀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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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부임 전에 재직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에서 한 남성이 장궤를 하고 기도하고 있다. 류재민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부임 전에 재직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에서 한 남성이 장궤를 하고 기도하고 있다. 류재민 기자
1부에서 등장한 의자 같은 소품이 장궤틀이었던 것도 종교적 분위기를 더했다. 장궤란 허리를 바로 세운 채 양 무릎을 꿇은 자세로 존경을 나타내는 행위로 가톨릭 성당에 가면 신자들이 기도할 때 보이는 바로 그 자세이다.

기도의자, 무릎의자로도 불리는 장궤틀은 젊은 여사제 아달지아가 노르마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에서 활용되며 비로소 무대에 가져다 둔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무대 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소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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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지아의 고해성사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아달지아의 고해성사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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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몰테니(1800~1867)의 ‘고해성사’
주세페 몰테니(1800~1867)의 ‘고해성사’
아달지아의 고해성사는 오예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고해성사를 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없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정면을 보게 된다. 오예는 아달지아의 고해성사를 듣는 노르마가 제사장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모습을 관객들만 볼 수 있게 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드러나야 하고 결국엔 누군가에게 보이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서로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관객들은 지켜보게 되는 고해성사는 그 모순적인 속성과 두 사람 사이의 교묘한 긴장감을 제대로 드러낸 동시에 이 작품에서 노르마가 앞으로 겪을 운명을 암시하는 훌륭한 장치였다. 철저하게 종교적인 연출을 했기에 의미가 살아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디테일을 제대로 느끼고 보면 일부를 가시면류관으로 꾸민 3500개의 십자가가 그저 공허한 소품이 아님을 알게 된다. 종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왜 그런지도 모르고 아쉽다고 느끼기 쉽지만 알고 보면 감탄에 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종교 연출의 진수를 보여줬기에 2부가 시작할 때 TV가 등장하고 배경을 현대로 전환한 것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르마’는 한국에서 보기 어렵고 한국 관객들에게 낯선 가톨릭 문화를 복합적으로 얽히게 연출하면서 숨은그림을 찾게 하는 신선한 즐거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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