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삶과 예술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현대인의 불안감을 표현한 걸작 ‘절규’로 노르웨이 미술을 전 세계에 알린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말년에 유년 시절을 회고하며 한 말처럼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했다.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 뢰텐에서 군의관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와 학자 가문 출신 어머니 레우라 뭉크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엄마 역할을 대신했던 한 살 위 누나 소피에 역시 뭉크가 14살 때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병실에서 죽음’(1893)과 ‘병든 아이’(1907)는 각각 어머니와 누이의 임종 순간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기억은 뭉크를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1880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 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모의 지원을 받아 국립 공예학교에 입학했다. 프랑스 파리로 국비 유학을 떠났던 1889년에는 뭉크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주거지를 자주 옮기다 보니 연락받지 못해 사랑하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마저 놓쳤다. 이 역시 뭉크를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이때 뭉크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 한스 예게르를 만나게 된다. 예게르를 만나면서부터 우리가 흔히 아는 뭉크 고유의 스타일이 시작된다.
뭉크에게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밀리 탈로. 뭉크는 진실했지만 그녀에게 뭉크는 많은 남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이때 받은 상처는 ‘뱀파이어’(1895)에 잘 표현돼 있다. 두 번째 여인은 다그니 유엘. 그녀에 대한 뭉크의 감정은 1894년 작품 ‘마돈나’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뭉크는 여성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란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관능적 존재지만 남자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팜파탈이라는 생각 말이다. 마지막은 툴리아 라르센.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며 결혼하자며 자살 소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총기 오발 사고로 뭉크의 왼손 가운뎃손가락은 완전히 부서졌다. 이후 극심한 여성 혐오로 평생을 독신으로 산다.
결국 뭉크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라며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는다. 퇴원 후에는 오슬로 인근 교외 에켈리에 집과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생애 후반 20년 넘게 혼자 산다.
공포, 불안, 갈등, 욕망, 죽음 등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주로 캔버스에 옮긴 뭉크지만, 자기 작품들을 보는 이들은 그런 어두움을 극복하길 바란 희망의 화가이기도 하다.
2024-04-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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