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악취 방치하면… 결국엔 안방을 향한다[OTT 언박싱]

화장실 악취 방치하면… 결국엔 안방을 향한다[OTT 언박싱]

입력 2022-07-14 17:42
수정 2022-07-1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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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공간이 된 ‘현대판 아고라’

현대판 트루먼쇼 겨냥 ‘소셜 딜레마’
로힝야족 집단학살 눈감은 페북
사업 확장을 위해서 혐오에 침묵
인간을 슈퍼 컴퓨터 뉴런 만들어
점차 ‘확증편향의 중독’에 빠뜨려

변질된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
트럼프·페페 합성하며 현상 심화
온라인 유저에 정체성 빼앗기며
성차별 등 혐오의 상징으로 변모
스마트폰 일상이 폭력·테러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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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딜레마’
‘소셜 딜레마’
2017년 미얀마 내에서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난민이 된 이들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페이스북이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과 로힝야족의 생명을 맞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소셜미디어가 만든 확증 편향의 딜레마, 그 어두운 소용돌이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이다.

이 작품에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 일했던 이들이 뭉쳐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이 빠진 ‘소셜 딜레마’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소셜미디어는 대중적으로 발전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의 창구이자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아고라를 형성했다. 문제는 이 공간이 인간을 사유의 동물이 아닌 슈퍼 컴퓨터의 뉴런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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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페페 구하기’
‘개구리 페페 구하기’
“고객을 사용자라 부르는 산업은 불법 마약과 소프트웨어 산업뿐이다”라는 예일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터프트의 말처럼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하면 고객을 더 중독시킬지 고민한다. 클릭을 유도하고 애플리케이션(앱)에 머무르는 시간을 증가시키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다.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흥미를 느낄 만한 영상을 연달아 제시한다. 이 과정에 대해 작품은 ‘현대판 트루먼쇼’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방송을 위해 조작되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걸 몰랐던 트루먼처럼 성장을 위한 사업의 한 부품이 되어 확증 편향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딜레마는 두 가지 방향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상황을 의미한다. 확증 편향은 내집단을 강화하고 외집단을 적대한다. 극단으로 향하면 남는 건 상대를 향한 불신과 증오다. 미얀마의 국민 앱으로 자리잡았던 페이스북은 사업을 위해 혐오에 침묵했다.

소셜미디어의 파급력은 가짜뉴스나 혐오를 자극하는 글을 삽시간에 퍼지게 만든다. 이 영향력은 오프라인 공간까지 향한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는 정치의 양극화라는 현상에 직면했다. 현대에 다시 등장한 아고라가 폭력과 비방으로 얼룩진 혐오의 공간이 돼 버린 것이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캐릭터가 국내에서도 유명한 개구리 페페다. 왓챠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이 캐릭터가 어떻게 혐오의 ‘밈’(meme)이 됐는지 설명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처음 등장한 ‘밈’은 문화나 사회현상이 유전자처럼 진화하고 전달될 수 있음을 뜻하는 단어다. 온라인 공간에서 밈은 짧은 영상이나 사진 등을 여러 차례 가공하며 즐기는 놀이 문화를 의미한다. 미국의 인디 작가 맷 퓨리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바탕으로 한 만화 ‘보이즈클럽’의 캐릭터 페페가 인기를 얻자 즐거움을 느낀다. 이 감정이 슬픔으로 바뀐 건 밈 경쟁이 시작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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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페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밈은 점점 더 극단을 향한다. 반유대주의, 동성애 혐오,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게시물에 페페를 등장시키며 혐오의 상징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 현상이 심화된 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출마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슬로건을 내세운 트럼프의 극우 가치관에 열광한 이들은 트럼프와 페페를 합성한 사진을 유포했다. 한 작가의 순수한 예술적 영감이 온라인 유저들에 의해 정체성을 빼앗긴 것이다.

두 편의 작품은 화장실(온라인)의 악취를 방치하면 안방(오프라인)을 향한다는 걸 보여 준다. 클릭이 절대적인 진리가 돼 버린 온라인 공간은 관심을 위해서는 누군가를 확증 편향의 중독에 빠뜨려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현대에 이런 현상은 폭력과 테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지닌다.

트루먼이 스스로 ‘쇼’를 끝냈듯 잠시 스마트폰을 꺼둘 때 광장은 청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2022-07-1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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