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시 읽는 시간’
영화 ‘시 읽는 시간’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데도 우리가 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효용성을 따지는 질문에 대한 영화적 답변이 하나 더 마련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 읽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직장을 계속 다니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겠다 싶어 퇴직을 결행한 사람(오하나), 장기근속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김수덕), 갑자기 해고를 당해 복직 투쟁 중인 사람(임재춘), 특별한 계획 없이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안태형),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페미니즘 예술가로 활동하는 사람(하마무).
영화 초반부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각각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이들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주제가 ‘존재(자)의 불안’임을 알 수 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는 존재자를 ‘있는 것’으로, 존재를 ‘있음’으로 구분한다. 더 쉽게 풀이하자. 존재자는 먹고살기에 급급한 ‘생존’을 뜻하고, 존재는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는 ‘삶’으로 등치된다. 요컨대 이들은 존재자로서의 생존과 존재하는 삶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다 그러하듯이.
이때 이수정 감독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바로 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시의 가치를 역설한다. “허무와 절망뿐인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함께 느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했다. 시는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가장 진실한 언어이며 기도이자 노래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시가 여하한 힘을 갖는지는 곰곰 생각해 볼 사안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가 잘나가는 양지인보다는, 소외된 음지인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호시절만 누리는 이는 시를 읽지 않는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2021-03-29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