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인사이드] ‘반바지·치마의 주적’ 하지정맥류
주말에 산에 올랐던 직장인 남성 A씨. 땀을 식히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렸는데 지인들이 종아리를 보며 걱정하는 말을 하는 걸 듣고서야 자신의 종아리를 유심히 보게 됐다. 혈관이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게 꼭 뱀이 기어가는 것 같았다. 특별히 아프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보기에 좋지 않다고 느껴 슬그머니 걷었던 바지를 내려버렸다.직장인 여성 B씨는 요즘 치마 입는 걸 꺼리게 됐다. 아침에는 괜찮은데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고 나면 저녁에는 다리가 무겁고 심한 경우에는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다리가 붓는 것도 걱정이다.
바로 종아리의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구불구불해지고 겉으로 튀어나오는 하지정맥류다. 하지정맥류는 하지, 즉 다리의 정맥혈관이 늘어나 울퉁불퉁하고 보기 싫게 튀어나오는 질환을 말한다. 흔히 종아리에 ‘힘줄’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만 거미 모양의 ‘실핏줄이 터진 것 같은’ 것과 작지만 파랗게 튀어나온 것도 해당된다.
의학적으로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정맥 중 흔히 얕은 정맥인 표재성 정맥이 3㎜ 이상으로 늘어난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타구니 부위에서 심부정맥으로 유입되는 대복재정맥, 무릎 뒤쪽인 오금부위의 소복재정맥이나 종아리의 관통정맥 등 표재정맥의 큰 줄기의 정맥판막의 기능 장애가 발생해 혈류가 역류하면서 종아리 부위의 혈관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정맥류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지정맥의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판막부전이라고 할 수 있다. 8일 중앙대학교병원 혈관외과 김서민 교수에 따르면 하지정맥류는 교사, 승무원, 판매직 등 오래 서 있는 직업군이나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직업 등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고 붓는 증상과 함께 쥐가 나거나 피로하다고 느끼며, 특히 피부가 검게 변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정맥류 내에서 혈전이 형성되고 모세혈관 벽 밖으로 빠져나온 적혈구 성분이 피부를 검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방·관리 최선…다리가 받는 압력 줄여줘야
정확히 한 가지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지는 않고 유전적인 원인, 비만, 임신과 출산, 외상,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직업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있을 경우 자신에게 생길 확률은 30~40%에 이른다.
기본적으로 하지정맥류는 만성정맥질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지정맥류 역시 예방·관리가 최선이다. 무엇보다 비만을 경계해야 한다. 비만인은 정상인보다 체내에서 순환하는 혈액의 양이 많은데, 이는 정맥이 늘어나기 쉬운 조건일 뿐만 아니라 정맥 벽에 지방이 축적되며 혈관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은 혈액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과 부츠도 다리에 딱 붙어 혈관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혈액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주현철 교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틈틈이 발목 돌리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 종아리 근육을 자극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면 좋다”고 조언한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혈액순환을 돕고 혈관 주변 근육을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다. 잠잘 때 쿠션이나 베개에 다리를 올려놓으면 낮 동안 하체에 뭉쳐 있던 혈액이 중력에 따라 심장으로 쉽게 흡수되며 부종을 가라앉힐 수 있다.
하지정맥류는 등급이 있는데 1기부터 6기까지 나눈다. 거미 모양의 혈관이 보이면 1기, 큰 정맥이 튀어나온 건 2기, 붓기 시작하면 특별히 정맥류가 없더라도 3기에 해당된다. 밖에 정맥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리가 부으면 바깥에 정맥이 아주 많이 튀어나온 것보다 만성정맥질환의 더 심한 단계이며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치료를 할 때는 발생 원인이 된 부위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혈관초음파검사, 혈관컴퓨터단층촬영검사(CT)를 시행한다. 판막부전에 의한 하지정맥류가 진단되었을 때 치료 목적은 증상을 완화시키고 병의 진행을 막고 확장된 정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존적 치료와 적극적 치료로 나눌 수 있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방법을 결정하면 된다. 보존적 치료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서 있는 생활 습관을 교정하고 낮 시간 동안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압박스타킹은 일반스타킹과 달리 일정한 압력으로 다리의 근육을 조여 종아리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도와 정맥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가능하면 아침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할 때부터 자기 전까지 착용하는 것이 좋고, 힘들다면 한곳에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서 있는 경우에는 꼭 착용하도록 한다. 특히 압박스타킹이 접히거나 구겨지면 특정 부위에 압력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항상 구김 없이 정확히 펴서 착용해야 한다.
보존적 치료로 효과가 없거나 보존적 치료가 일상 생활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판막부전에 의해 역류가 있는 대복재정맥, 소복재정맥, 관통정맥을 제거하거나 혈류가 통하지 않게 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술을 통해 원인 정맥을 제거하지만 최근에는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고주파나 레이저를 이용해 원인 혈관의 경화를 유도해 역류를 차단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레이저 치료는 발생한 열을 이용해 정맥 내 혈관내피세포에 손상을 줘 병든 정맥을 제거하기 때문에 통증과 흉터를 최소화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전에는 수술 자체의 통증이 심하고 절개를 많이 했기 때문에 병이 진행하거나 합병증이 생긴 다음에야 수술을 권했다. 현재는 여러 가지 간단한 치료방법들이 많이 활성화되면서 수술을 일찍 하기를 권유하게 됐다. 그리고 수술적 치료를 시행하는 것에 대한 기준도 이전과 비교하여 매우 객관적으로 나와 있어서 초음파로 역류시간을 정확히 측정해서 수술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수술을 하더라도 1시간 정도의 부분마취로 이루어지는 수술이라 입원과 회복기간이 필요치 않고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서울아산병원 혈관외과 한영진 교수는 “고주파나 레이저 치료는 수술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통증 및 합병증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면서 “이 밖에 경화요법이나 접착제를 이용한 다양한 치료가 있으나 제한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2019-12-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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