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 중박 기증관서 유물 다시 마주한 기증자들 “영원한 가치 갖게 됐다”

‘새 단장’ 중박 기증관서 유물 다시 마주한 기증자들 “영원한 가치 갖게 됐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4-01-14 13:42
수정 2024-01-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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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9년만에 기증관 개편
지난 11일 주요 기증자 한자리에 모여
국보 ‘세한도’, ‘수월관음도’ 특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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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석한 손성규 연세대 교수가 아버지 손창근씨가 2020년 기증해 화제를 모은 추사 김정희의 역작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정서린 기자
행사에 참석한 손성규 연세대 교수가 아버지 손창근씨가 2020년 기증해 화제를 모은 추사 김정희의 역작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정서린 기자
“우리 집안에 몇십 년 머물다 떠난 유물이 이렇게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만나 ‘영원한 가치’를 갖게 됐네요. 한 가정이 품고 있는 것보다 이렇게 국가가 소장하고 관리해주면서 작품이 가진 의미와 힘이 앞으로 더 커질 거라 믿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의 마지막 ‘기증 테마 공간’. 이곳에서 한때 집안의 유물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다시 만난 손성규(65) 연세대 경영대 교수의 얼굴엔 감회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박물관이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19년 만에 기증관을 처음 개편하면서 주요 기증자 10여명을 초대한 자리에서였다. 2022년부터 2년에 걸쳐 새 단장을 마친 기증관 문을 새로 열며 박물관은 ‘세한도’와 ‘수월관음도’(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 기증)를 오는 5월 5일까지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손 교수의 아버지인 손창근(95)씨는 대를 이어 전해오던 ‘세한도’ 등 평생 수집한 문화재 305점을 지난 2020년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직접 못 오셨지만 당신 품을 떠난 세한도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 기증의 뜻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하셔서 제가 왔다”며 “이렇게 잘 보존되고 관람객들과 5월까지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 아버지께 ‘세한도’가 잘 관리되고 있다고 전해드려야겠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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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관을 개편해 재개관하며 주요 기증자들을 초청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새 단장을 마친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안주영 전문기자
지난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관을 개편해 재개관하며 주요 기증자들을 초청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새 단장을 마친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안주영 전문기자
644평(2129㎡) 규모의 기증관은 114명이 기증한 1671점의 유물을 주제별로 소개했다. 기증관의 이번 개편은 평생 모은 유물을 선뜻 국가에 내놓은 기증자들의 큰 뜻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존에는 이홍근실, 박병래실 등 기증자별로 공간을 따로 구획해 전시 구성이 획일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에 박물관 측은 기증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유물이 지닌 이야기와 가치, 기증의 뜻을 더 입체적으로 부각하면서도 주제별로 유물을 엮어 전시 공간에 더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LG디스플레이의 투명 올레드(OLED)를 활용한 영상으로 관람객들의 감상을 효과적으로 돕는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토기 1719점을 기증한 고 최영도(1938~2018) 인권변호사의 토기를 전시한 공간에서는 토기가 나란히 놓인 배경에 불과 연기 등이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영상 등으로 토기의 물성과 온기를 물씬 느끼게 했다. 김종학(87) 화백이 기증한 목가구들을 모은 전시 공간은 사랑방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화가인 그의 대표작인 설악산 설경을 담은 영상을 창밖에 보이는 ‘차경’처럼 펼쳐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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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석한 유창종(오른쪽) 유금와당박물관장과 아내 금기숙 전 홍익대 교수가 기증품이 전시된 공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서린 기자
행사에 참석한 유창종(오른쪽) 유금와당박물관장과 아내 금기숙 전 홍익대 교수가 기증품이 전시된 공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서린 기자
‘기와를 사랑한 검사’였던 유창종(79) 유금와당박물관장은 이날 2002년 옛 기와 1873점을 기증하던 당시 유일한 조건으로 내걸었던 ‘이우치 이사오·유창종실’이 이번 개편으로 실현된 데 대해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해했다.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1911~1992)가 1987년 한일 친선을 위해 기와·벽돌 1082점을 당시 옛 조선총독부 자리에 있던 박물관에 기증하자 ‘한국인은 뭘 했나’ 하는 부끄러움에 유물 기증을 하게 됐다는 그는 오랫동안 두 컬렉션의 합일을 꿈꿨던 것이다.

“와당을 기증하고 가끔 기증관을 찾을 때마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죠. 기증자들의 기대와 달리 왜 이렇게 관람객이 없을까. 앞으로 더 좋은 유물이 기증되면 어디에 전시를 할까. 이번 개편으로 기증자들의 유물이 주제에 따라 조화롭고 지혜롭게 전시된 걸 보니 아주 흡족해요. 관람객들도 더 흥미롭게 기증관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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