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데 뼈 때리네”…리움이 펼친 ‘작가들의 작가’ 김범의 30년 탐구

“웃긴데 뼈 때리네”…리움이 펼친 ‘작가들의 작가’ 김범의 30년 탐구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3-08-01 13:30
수정 2023-08-01 13: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리움미술관, 개념미술 대표작가 김범 작품 70여점 모아
작가 설득 끝 13년만에 국내 개인전 “언제 볼지 모를 전시”
허 찌르는 유머, 간결한 표현으로 ‘새롭게 보기’ 제안
김성원 부관장 “농담처럼 툭 던진 이미지, 자기 성찰하게 해”

이미지 확대
김범,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 돌, 목재,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87분 30초), 가변 크기. 클리브랜드 미술관 소장. 영상 강의를 통해 돌이 자신이 한 마리 새라고 교육받는 과정을 통해 한 대상에 본질과 어긋난 의미과 정체성이 주어지는 과정을 예리하게 짚었다.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 돌, 목재,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87분 30초), 가변 크기. 클리브랜드 미술관 소장. 영상 강의를 통해 돌이 자신이 한 마리 새라고 교육받는 과정을 통해 한 대상에 본질과 어긋난 의미과 정체성이 주어지는 과정을 예리하게 짚었다.
리움미술관 제공
나무 위에 오른 돌 하나. 돌은 87분간 끈질기게 “너는 새”라고 교육받는다. 영상 속 강사는 돌에게 나는 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실습까지 시키는 촌극을 벌인다.

유리상자 속 모형 배에게도 강연이 한창이다. 영상에서 강사는 “지구는 육지로만 이뤄져 있고 바다는 없다”고 91분간 배를 ‘세뇌’시킨다.

과도하게 진지하고 정성스런 강의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터지지만 불현듯 ‘나’를 포개보게 된다. 가짜 지식을 주입당하고 자신의 본질을 구현할 수 없는 사회, 진실과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부조리극’과 다를 게 뭔가.
이미지 확대
김범, 임신한 망치(1995), 목재, 철, 5 × 27 × 7cm. 개인 소장. 사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망치라는 일상적 사물을 잉태라는 동물적 생명력과 연결한 작품으로 망치라는 공구가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것과 배 속의 아이를 내놓는다는 뜻을 포갠 것이기도 하다. ⓒ김범
김범, 임신한 망치(1995), 목재, 철, 5 × 27 × 7cm. 개인 소장. 사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망치라는 일상적 사물을 잉태라는 동물적 생명력과 연결한 작품으로 망치라는 공구가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것과 배 속의 아이를 내놓는다는 뜻을 포갠 것이기도 하다.
ⓒ김범
김범(60) 작가는 이렇듯 특유의 허를 찌르는 유머와 통찰, 가장 간명한 표현 등으로 보이는 것과 그 이면의 진실 사이 틈을 벌려놓는다. 관람객들은 그 틈으로 들어가 유영하며 ‘새롭게 보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과 관습이 뒤집히는 순간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로 25만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은 리움미술관이 그의 30년 작업을 펼친 이유다.

김범은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작가들의 작가’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예술의 역할을 실험하고 탐구해온 한국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다. 미술관 측은 공개 석상을 꺼리고, 전시에도 극도로 신중한 그를 설득해 작가의 최대 규모 전시이자 13년만의 국내 개인전을 마련했다. 때문에 “이번에 보지 않으면 또 언제 볼지 모를 전시”라는 평이 나온다.
이미지 확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전시 전경. 한 관람객이 미로 퍼즐을 대형 회화로 구현한 ‘무제 친숙한 고통 #13’을 감상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제공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전시 전경. 한 관람객이 미로 퍼즐을 대형 회화로 구현한 ‘무제 친숙한 고통 #13’을 감상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제공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농담처럼 툭 던진 작가의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 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며 “90년대부터 미술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 차세대 작가들의 관심이 크지만, 실제 작품을 본 사람은 드물어 작품세계를 알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작업 하나에 2~3년이 걸리는 ‘과작 작가’라 전시는 그가 1990년대 초반부터 2016년까지 만든 구작으로 꾸려졌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70여점이 나왔다.
이미지 확대
김범, 볼거리(2010),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분 7초. 치타와 영양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반대로 설정해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뒤집어보게 한다.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볼거리(2010),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분 7초. 치타와 영양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반대로 설정해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뒤집어보게 한다.
리움미술관 제공
지하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가로 10m 규모의 대형 영상 작품부터 관람객에게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란 화두를 내리꽂는다. ‘볼거리’(2010)라는 1분 7초짜리 영상은 익숙한 ‘동물의 왕국’ 속 영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이하다. 치타가 영양을 쫓는 게 아니라 영양이 치타를 맹렬히 추격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양육강식의 질서에 무감해진 우리에게 이를 뒤바꿨을 때 어떤 세상이 가능할지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확대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강사가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한 획씩 추상하는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통해 불확실한 관념에 다가서려는 예술가의 노력과 애환을  보여준다. ⓒ김범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강사가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한 획씩 추상하는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통해 불확실한 관념에 다가서려는 예술가의 노력과 애환을 보여준다.
ⓒ김범
비명과 웃음이 함께 터져나오는 공간도 압권이다. 한 예술가(섭외된 배우)가 비명을 지르며 비명의 종류마다 다른 색감의 노란색, 획의 움직임으로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노란 비명 그리기’(2012)다. 작품마다 이상적인 의미, 관념을 짜내야 하는 예술가들의 애환을 풍자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작품이다. 세로 5m, 가로 3.5m 크기의 대형 회화 ‘무제 친숙한 고통 #13’은 미로 퍼즐을 대형 회화로 구현해 인생의 난관을 압축하는 동시에 이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간담회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작가는 9월 7일 ‘토크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그와 전시를 기획한 김 부관장, 주은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작품 이야기를 나눈다. 12월 3일까지.
이미지 확대
김범,  무제 그 곳에서 온 식물들(2007~현재). 신문과 잡지에서 오린 식물과 땅 사진을 덧붙여 2007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만든 작품으로, 매체를 통해 선별되고 번역된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마주하는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매일홀딩스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무제 그 곳에서 온 식물들(2007~현재). 신문과 잡지에서 오린 식물과 땅 사진을 덧붙여 2007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만든 작품으로, 매체를 통해 선별되고 번역된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마주하는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매일홀딩스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