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화단서 주목받는 제이디 차 첫 국내 개인전
스페이스K 서울서 회화, 조각, 설치 작품 33점
마고할미, 구미호…전통설화 인물·동물서 영감
제이디 차, <미래의 우리들(Future Selves)>, 2023, Oil on canvas, 55×70㎝
스페이스K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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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40)가 처음 선보인 이 할머니 초상화의 제목은 ‘미래의 우리들’(2023). 마치 중세 귀족 여성의 초상화처럼 인물의 고귀함을 부각시키는 이 작품은 나이 든 여성에 권력과 지혜를 부여하며 존재 가치를 승격시킨다. 여성의 젊음에만 탐닉하고 노년 여성은 주변부로 밀어내며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해온 현실을 과감히 전복하려는 시도다. 남성 중심적 역사에서 무속 신앙 속 하찮은 존재로 잊혀져가는 창조신 마고 할미, 교활한 존재로 폄훼됐던 구미호를 우리 시대로 불러낸 것이기도 하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인 제이디 차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에서 우리 전통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스페이스K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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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는 이처럼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들에 힘과 가치를 불어넣으며 이들의 지위를 끌어올린다. 캐나다 교포 2세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경계인으로 살며 겪은 진통, 정체성에 대한 통찰의 결과물인 셈이다.
대구가 고향인 어머니에게서 밤마다 들었던 구미호와 바리데기 등의 전통설화, 학생 시절 탐구해온 여성 주도의 한국 전통 샤머니즘 등을 재료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풀어내며 회화, 설치, 조각 등 33점을 내놨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이디 차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의 전시 입구 전경. 해태를 탄 마고 할미 왼쪽에 7개의 지는 해로 캐나다 밴쿠버의 일몰을 형상화한 조각보가 걸려 있다.
스페이스K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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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동물, 혼종을 영물로 지위 격상시켜
약자 밀어내고 존중하지 않는 사회 구조 전복작가의 이런 뜻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해태를 탄 마고 할미 ‘안내자와 짐승’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장군 등이 맡아온 꼭두의 리더로 마고 할미를 세우며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여성 역사, 샤머니즘 속 페미니즘을 주 무대에 올려놓는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을 장식하는 대형 회화 ‘트릭스터, 잡종, 짐승’(2023)은 동물과 혼종의 캐릭터들을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작가의 화두를 관통하는 집합체로 읽힌다. 성가신 존재로 여겨져온 갈매기나 교활함의 대명사인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작가가 키우는 반려견 등이 달과 뿔소라, 다른 차원으로 오가는 듯한 문 등 신비로운 배경 속에 한데 어우러져 있다. 중세 시대 종교화처럼 3폭으로 펼쳐진 형식이나 제단, 사당, 무대처럼 보이는 구조물 위에 작품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작가는 천대받아온 동물들을 영물, 권능한 존재로 재탄생시켰다.
제이디 차, <트릭스터, 잡종, 짐승(Tricksters, Mongrels, Beasts)>, 2023, Oil on canvas, 600×240㎝(Tript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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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두 개의 문을 통과하면 미로를 탐험하는 듯한 동선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돼 있다. “관람객들이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거나 각각의 작품과 오롯이 대면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깃든 것이다. 관람이 끝나고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2층에서 전시장을 내려다볼 기회도 놓치지 말자. 전시장 자체에서도 작품들에서 모티브로 거듭 쓰인 전통 조각보가 구현돼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이디 차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의 전시 전경.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조각보 모티브가 전시장 자체에 구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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