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展
큰 물건 갈망하며 날씬한 몸 집착
현대인들의 이중적 태도 꼬집어
거대한 스웨터는 이웃 사랑 표현
사진·관객 참여 퍼포먼스 조각도
“조각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어”
‘사회에 대한 고찰’에 전시된 이웃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11m 크기의 작품 ‘사순절 천’.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경기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7일부터 열고 있는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의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에서는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한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들을 만날 수 있다. 부름은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오스트리아 국가관 작가로 선정되기도 한 유럽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사회에 대한 고찰’ 부분에 전시된 ‘팻 컨버터블’(팻 카). 자본주의와 소비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팻 카를 지나면 보라색의 거대한 천이 바닥까지 늘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거대한 스웨터다. 2020년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슈테판 대성당 중앙 제단에 걸렸던 ‘사순절 천’이라는 작품이다. 사순절은 기독교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며 40일 동안 회개하고 자선을 행하는 기간인데 보라색 천으로 십자가상, 성화, 제단 등을 덮는 전통이 있다.
이를 재해석한 작가는 니트 재질로 11m 크기의 거대한 보라색 스웨터를 만들어 이웃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표현했다. 국내에서는 천장 높이가 11m 되는 전시실이 없다 보니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 전시했다.
‘참여에 대한 고찰’이라는 전시실로 넘어가면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와 그 위에 있는 찰흙 덩어리, 가지런히 놓인 청소도구들을 보면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면서 조각 작품을 완성시키는 일명 ‘퍼포먼스 조각’이다.
작품들 옆에 제목과 함께 어떻게 행동하면 된다는 지시문이 붙어 있다. 관람객의 참여 없이는 조각이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줘 전통적 조각의 개념을 뒤집고 개념의 확장을 이루는 것이다.
사진도 조각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이라는 연작을 냈다. 그중 한 작품인 ‘사무실 화장실에서 낮잠 자기’.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전시를 기획한 수원시립미술관 박현진 학예연구사는 “조각을 흔히 큰 물성을 가진 덩어리라고 생각하지만 부름은 시간성, 참여, 좀더 가벼운 것, 심지어 사진까지도 조각의 요소로 포함시키고 있다”며 “전시 제목처럼 조각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보여 줘 조각이라는 영역을 훨씬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2023년 3월 19일까지.
2022-12-26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