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또 다른 얼굴… 호림박물관 철화청자 특별전
고아하게 퍼져 나가는 푸른빛, 상감기법으로 새긴 정교한 무늬…. ‘고려청자’라고 하면 단박에 이런 귀족적 풍모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는 고려청자가 펼친 드넓은 미학의 일부일 뿐이다.13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철채상감 보상화당초문 매병. 철사안료로 표면 전체를 칠하고 문양 바탕을 백토로 상감한 이런 방식은 고려청자에서 매우 이색적인 장식 기법이다.
호림박물관 제공
호림박물관 제공
고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호림박물관이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9월 30일까지 여는 고려 철화청자 특별전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의 풍경이다. 박물관이 철화청자전을 여는 것은 21년 만으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철화청자의 90%가 전시장에 나왔다. 이 가운데 절반은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고려청자로는 드물게 건축 부재인 난간 기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철화모란당초무늬난주. 생명력 넘치는 모란 덩굴 무늬가 인상적이다.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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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는 순서는 제1전시실인 4층에서 제2전시실(3층), 제3전시실(2층)로 내려가면서 보는 게 좋다. 명품 철화청자들은 제1전시실에 대거 몰려 있다. 특히 모란을 닮은 듯 연꽃을 닮은 듯한 상상의 꽃(보상화)을 꽉 차게 철사안료로 그려 백토로 무늬의 바탕을 상감한 매병이 눈길을 잡아끈다. 유약을 입히지 않아 광택 없는 질감이 외려 과감한 붓질의 장식효과를 극대화한다. 유진현 학예연구팀장은 “매병 가운데 유약을 입히지 않은 철화청자가 소개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일 것”이라며 “13세기 후반 청자에 유약을 입히지 않던 예외적인 시기에 탄생한 드문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울음통에 활짝 핀 연꽃 넝쿨 무늬가 화려한 철화청자 장고.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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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전경.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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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시왕도는 조선 후기인 1764년 그려진 작품으로 필선이 일정하고 탄력적이어서 실력 있는 화승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망자의 혀를 길게 뽑아 쟁기질하는 장면, 오장육부를 빼내는 장면 등 인물들의 표정이나 장면 묘사가 실감 나게 그려진 데다 웹툰과 곁들여지니 흥미진진하다.
이장훈 학예연구사는 “우리는 르네상스, 바로크 등 서양미술은 가깝게 느끼면서 정작 우리 문화의 뿌리인 불교미술은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관람객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불교 속 이승과 저승, 한국의 토속신앙을 만화로 옮겨 인기를 끈 웹툰과의 컬래버레이션을 꾸며 본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3-2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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