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정수… 이혜영 주연의 국립극단 연극 ‘메디아’
한 여인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정적을 깬다. 검은색의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암흑 같은 분노를 휘감은 듯 보인다.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한 이 여인은 치밀어 오르는 광기를 어쩌지 못한 채 내내 몸부림치고 허우적댄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서슴지 않지만 결국 모든 걸 잃고 파멸하는 여인, 메디아. 신화 속 최고의 악녀가 지금 우리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연극 ‘메디아’에서 ‘메디아’(오른쪽·이혜영)는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왼쪽·하동준)을 향한 극한의 분노를 처절하게 표현한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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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를 둘러싼 유모와 15명의 코러스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악에 받친 메디아를 연민하다가도 자녀를 죽이는 그녀의 잔인한 모습에 비난을 퍼붓는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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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가 입은 붉은색의 힘없는 저지 드레스는 기구한 운명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그녀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한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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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디아를 메디아답게 표현한 배우 이혜영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을 치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로 이혜영 외에 다른 사람을 꼽기 힘들다는 평이다. 김방옥 연극평론가는 “소외감과 복수심에 휩싸인 한 여자가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분열적인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다층적인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소화해 냈다”고 말했다.
생애 처음으로 연극 의상에 도전한 진태옥 디자이너의 의상도 주목할 만하다. 극 초반 맹목적인 분노와 고통에 휩싸인 메디아는 검은색 벨벳 드레스와 실크 망토를 걸치고 등장한다. 후반부 힘없이 아래로 축 처진 붉은색 저지 드레스는 복수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고 어떠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메디아를 나타낸다. 메디아가 자녀를 살해하는 잔인한 장면 등이 포함된 까닭에 20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 4월 2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1644-2003.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03-1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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