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자연·생태 공생 주제 ‘대지의 시간’展
버려진 물건 재활용, 전시장 쓰레기 최소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 내년 2월까지
김주리, ‘모습’(某濕 Wet Matter_005), 2021, 흙을 기본으로 한 복합재료, 가변설치 (최대 3m x 11m x 5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가장 눈에 띄는 건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김주리 작가의 ‘모습’(某濕)이다.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을 뜻하는 모습이 아니라, ‘어떤 젖은 상태’를 보여 주는 이 작업의 정체는 11m의 거대한 흙덩어리다.
비 온 뒤의 땅 혹은 공사장의 진흙 같은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습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압록강 하구 부드러운 땅에서 나온 흙을 주재료로 물기를 머금은 흙 표면을 재현했는데, 이를 통해 자연의 순환 과정을 보여 주려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지의 시간’ 기획전에 전시된 올라푸르 엘리아손 작가의 ‘시간 증폭기’(Time Amplifier) 일부. 2015, 유목, 검은돌, 크리스탈 구, 철, 30 x 100 x 30 cm.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나무는 시베리아 등에서 해류를 따라 아이슬란드 해변으로 밀려온 표류목이고, 만질만질한 작은 검은 돌은 오랜 시간 바람과 파도의 풍화작용을 거쳐 깎인 것이라고 한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의 개념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긴 세월이 재료 자체로 증명되는 셈인데, 이를 알고 나면 ‘시간 증폭기’란 작품 제목에도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버려질 뻔한 전시장의 진열장을 활용한 작품도 있다. 정소영 작가의 ‘미드나잇 존’이 그렇다. 작가는 전시 후 폐기할 예정이었던 진열장 안을 염화나트륨으로 채우고, 분절된 바다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자연의 특정 대상을 박제하기 위한 공간이었던 진열장이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지의 시간’ 기획전에 전시된 서동주 작가의 ‘비전’(Vision). 2021, LED 스크린, 프로젝터, 스피커, 시아노프린트 등,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지의 시간’ 기획전에 전시된 백정기 작가의 ‘육각부적’. 2021, 점토, 에폭시 레진, 시멘트, 타일 개당 42 X 36 X 1.2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지의 시간’ 기획전에 전시된 정규동 작가의 ‘인과율’(Causality), 2021, PET 재활용재, 실,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생태미학연구소와 협업해 국내 생태 미술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도 마련됐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생태미술의 역사를 보여 주고, 현대에 이르는 주요 작가와 전시 프로젝트도 소개한다. 내년 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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