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 시도에도 사우디 살해 정황 나와
고문 과정서 총영사 목소리도 확인“법의학자가 음악 들으며 시신 훼손”
NYT “美에 1억弗 입금” 밀약 가능성
트럼프 “무죄 입증 전 유죄? 난 싫다”
자말 카슈끄지의 모습. AP 연합뉴스
터키 친정부 언론 예니샤파크는 17일 카슈끄지가 피살된 상황이 담긴 오디오 내용을 확인한 결과 그가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지난 2일 당일 손가락 여러 개가 잘리는 고문을 당한 후 참수됐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살해 정황이 담긴 오디오 내용이 보도된 것은 처음으로, 사건의 실체에 가장 근접한 터키 측에서 나온 정보로 신빙성이 높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파견된 암살자들이 카슈끄지를 고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무함마드 알오타이비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의 육성도 확인됐다. 알오타이비 총영사는 고문이 시작되자 “그건 밖에서 하시오. 당신들이 나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소”라고 말했고, 곧바로 신원 불명의 남성이 “사우디로 돌아갔을 때 살아남고 싶다면 조용히 해”라고 총영사를 위협했다. 알오타이비 총영사는 터키 경찰이 영사관을 수색한 직후인 16일 본국으로 돌아갔다.
중동의 사우디 비판 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MEE)는 16일 터키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는 총영사 집무실에서 옆방 서재로 끌려가 신문 절차 없이 곧바로 책상 위에서 살해됐으며, 그 과정이 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카슈끄지의 비명은 확인되지 않은 물질이 주사된 뒤 멎었고 사우디 당국이 파견한 법의학자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시신을 토막 냈다”는 흉흉한 증언도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 왕실이 미 정부 계좌에 1억 달러(약 1127억원)를 입금한 게 확인됐다고 이날 전했다. 이 돈은 사우디가 지난 8월 시리아 재건 및 안정화 지원 명분으로 트럼프 정부에 송금하기로 약속했던 자금이다.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는 “입금된 타이밍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트럼프 정부와 사우디 왕실 간 밀약이 있다는 걸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의 기획 살해 의혹을 브렛 캐버노 미 연방대법관 인준 논란에 빗대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유죄라는 논리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캐버노 대법관을 조사했고, 그는 내가 아는 한 쭉 무죄였다”고 또다시 옹호했다.
전날 사우디에 급파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살만 국왕, 빈살만 왕세자 등과 회동한 후 “사우디 지도부는 이스탄불 주재 총영사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터키로 이동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사우디 정부가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카슈끄지 실종에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는 23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개막하는 국제 투자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서 연설하기로 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사우디 방문을 전격 연기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8-10-1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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