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 항거·피규어 행진’… MZ세대, 미얀마를 바꾼다

‘세 손가락 항거·피규어 행진’… MZ세대, 미얀마를 바꾼다

김정화 기자
입력 2021-02-22 22:06
수정 2021-02-2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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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층이 시위 주도
군부가 인터넷 끊자 블루투스로 소통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은 SNS 인증샷
풍자 그라피티 등으로 시위 참여 독려

젊은 장교 중심 軍내부도 변화 움직임
NYT “미얀마 집회, 카니발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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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사진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20대 여성 카인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21일 양곤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양곤 EPA 연합뉴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사진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20대 여성 카인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21일 양곤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양곤 EPA 연합뉴스
1962년, 1988년, 그리고 2021년. 군부 세력을 몰아내려는 미얀마 민중의 열망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졌지만, 이 여정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지난 1일 발발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2주 넘게 항의 시위가 벌어지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망한 인원은 총 4명, 부상당한 이들은 수백 명이다. 지난 19일 수도 네피도에서 20세 여성 미야 트웨트웨 카인이 경찰의 총을 맞고 뇌사에 빠졌다가 사망하며 처음 희생됐고, 20일에는 경찰이 시위대에 고무탄과 실탄 등을 난사해 만달레이와 양곤에서 3명이 숨졌다. 그럼에도 ‘미얀마의 봄’을 향한 희망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른다. 시민들은 유혈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카인이다”라며 시위를 이어 간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다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이번엔 다르다… 청소년 위주로 SNS서 소통

이번의 시위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민주화운동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집회 방식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서다. 악을 몰아낸다는 의미가 있는 냄비 두드리기, 오토바이 경적 울리기 등 ‘전통적인’ 시위를 이어가는 한편 젊은층을 중심으로 온라인 결속도 강화했다.

시민 불복종 운동(CDM·Civil Disobedience Movement)은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블루투스를 이용해 100m 이내 다른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스마트폰 앱 ‘브리지파이’는 쿠데타 이후 몇 시간 만에 60만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페이스북의 CDM 페이지 팔로어도 22만 7000명이 넘는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1988년엔 시민들이 시위를 끝내고 흩어지기 전 다음 계획을 입소문으로 전달하곤 했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유선 전화조차 없었다”며 “요즘 시위대, 특히 청년이 온라인 대화방과 SNS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방식은 인상적이고 조직적”이라고 평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사진은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다양한 이미지로 만든 ‘자유를 위한 예술’ 사이트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사진은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다양한 이미지로 만든 ‘자유를 위한 예술’ 사이트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한 세대를 거치며 시민의 의식 수준이 진화했다는 것도 큰 변화다. CNN은 “심각한 경제 불평등이나 민족적 분쟁은 여전하지만, 주요 도시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며 “군대가 마지막으로 통치한 이후 미얀마는 사회적 자유를 누렸고, 외국인 투자나 중산층 확대와 함께 엄청나게 변화했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휴대폰 유심 칩이 1000달러였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시민들은 SNS에서 빠르게 소통한다는 것이다.

군부가 쿠데타 이후 계속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것도 결집을 막기 위해서다. 네트워크 모니터링 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일주일째 미얀마 내 인터넷 접속량은 평소의 15~20%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미얀마의 젊은 운동가들은 어두운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지만, 그들이 변혁적인 결과를 낳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봤다.

●초국가 연대로 결집하고 정보 공유

젊은 세대는 과거의 진지하고 경직된 시위 문화도 바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얀마에서 매일 벌어지는 거리 집회는 카니발 축제 같은 느낌을 준다”며 “그라피티 아티스트는 건물과 벽에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들은 성난 시로 항의하고, 만화가 노조는 직접 그린 피규어를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SNS ‘인증용’ 시위 이미지를 통해 젊은 세대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한다. 군부를 녹색 돼지 머리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붉은 하이힐로 대비시킨 작품을 만들어 온 현지 그래픽 디자이너 코키아우 난다는 “미얀마 저항의 역사에서 우리는 유혈 사태와 함께 상당히 공격적이고 대립적으로 대응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새로운 접근 방식은

(군부를 덜 자극해) 위험을 줄이고, 더 많은 이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한다”고 했다. 온라인 사이트 ‘자유를 위한 예술’(Art for Freedom)은 표지판과 스티커, 티셔츠 등에 인쇄할 수 있는 디자인을 무료로 만들어 배포한다.

앞서 홍콩, 대만, 태국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도 미얀마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국경을 초월해 반독재, 반권위주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한다. 대표적인 게 세 손가락 경례다. 영화 ‘헝거게임’에서 나온 제스처인데, 태국 반정부 시위에서 쓰인 후 미얀마에서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미얀마 젊은이들은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온라인 기반 네트워크 ‘밀크티 동맹’(Milk Tea Alliance)을 맺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세 손가락 경례 사진을 게시하고, ‘#SupportCDM’, ‘#SaveMyanmar’ 같은 해시태그로 전 세계와 소통한다.

시위대의 목표는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보다도 포괄적이다. 양곤대 학생회는 완전한 민주주의와 2008년 군사헌법 폐지 이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고, 소수민족 라카인과 카렌 시위대는 자결권과 연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요컨대 군부 정권을 몰아내는 것과 함께 기존 정권도 거부하며 과거의 적폐와 단절하겠다는 뜻이다. 포린폴리시는 “시민 불복종 운동은 과거 집회의 파업과 비슷하지만 훨씬 뚜렷한 목표와 방법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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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여전한 ‘벽’… “고립은 안 돼”

이들의 항거가 이번에는 완전한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십 년간 국가를 장악한 군대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흘라잉 등 군부는 민주정부 출범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했다. 의회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의석을 군에 할당해 헌법을 개정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내무·국방·국경경비 등 3개 주요 부처를 맡아 통제했다. 또 군부는 대표적인 대기업 미얀마경제공사(MEC)와 미얀마경제홀딩스(MEHL)를 소유하고 있는데 보석, 구리, 통신, 의류 등 광범위한 부문에 투자하는 이 두 기업에 대한 궁극적인 권한을 흘라잉이 갖고 있다.

미얀마 일반 시민의 의식이 변한 것처럼 군부의 이데올로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난관이다. 미얀마 국제 위기그룹의 전 수석분석가 모르텐 페데르센은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에 기고한 글에서 “1960~1980년대 군 장교들은 민주주의의 ‘악함’을 주입받았지만, 그 이후의 군인들은 헌법이 ‘다당 민주주의 체제’로 부르는 것을 보호하는 게 의무라고 배웠다”며 “현 세대 군인은 이전 세대와 매우 다른 삶을 살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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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양곤 EPA 연합뉴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시위가 전개되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티셔츠, 플래카드 등에 인쇄할 수 있는 시위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양곤 EPA 연합뉴스
미얀마 싱크탱크인 양곤 탐파디파 기관 대표 킨 자우 윈도 이번 군부 쿠데타는 잔인하게 이뤄진 과거와는 다르다고 봤다. 그는 “군부가 사용하는 성명과 언어가 매우 제한적이다. 마치 시민들을 달래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기존 헌법이 버려졌지만, 이번에는 이를 유지하는 것도 다르다”고 했다. 군부 정권이 강경 진압을 이어 가면서도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대변인은 지난해 부정선거가 벌어졌다는 의혹과 코로나19 퇴치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들을 대하는 국제사회의 고민도 깊어진다. 유엔과 미국, 유럽 각국 등이 반발 성명을 내고 압박 수위를 높여 가고 있지만, 자칫 더 큰 유혈 사태로 번질 우려 때문이다. 페데르센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확대되기 전까지 국제사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시위대와 군경의 대립이 심해지면 민간 정부로의 이양은 더 멀어진다. 30년간의 진보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타협”이라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1-02-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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