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핵합의 등 행정약정과 달리 차기 정부서 뒤집기 어려운 ‘Treaty’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제작 이태호, 최자윤] 사진합성 * 사진 카펠라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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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제네바합의땐 의회반대로 ‘기본합의’…비준못받은 이란 핵합의는 철회
북한과 미국 정상이 오는 12일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에 관한 합의를 이뤄낸다면 이를 ‘협정’(treaty)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북미 정상간의 합의가 협정으로 미 의회의 비준을 받을 경우 이행의 안정성이 담보될 수 있는데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쉽게 번복하기가 어려워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 정권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 ABC뉴스는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기념비적인 협정’(landmark treaty)이 의제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짐 리쉬(공화) 상원의원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모두 북한과 이뤄낼 어떤 합의든 협정(treaty)의 형태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쉬 의원은 이어 “그것은 우리와 북한 모두에 좋은 일”이라며 “북한으로서는 후임 행정부가 뒤집을 수 있는 행정협정 또는 약정(executive agreements)이 아니라는 사실에 의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은 바로 협정(treaty)이 될 것”이라면서 “그들(트럼프 대통령 등)은 협정으로서 (의회에서) 표결이 이뤄질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treaty는 협정 이외에 일반적으로 국가간에 맺는 조약으로도 번역되지만 북한과 미국처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아 조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를 놓고는 이론이 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도 지난달 24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어떤 합의도 의회로 보내 협정으로서 비준받기를 원한다고 증언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합의가 이뤄지면 그것을 상원에 협정으로 제출하겠다는 말이냐’는 벤 카딘(민주)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며 “우리가 (합의에) 성공하면 그렇게 하는 게 적절한 일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달 13일 CNN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의 합의가 나올 경우 상원으로 보내 비준을 받겠느냐는 물음에 “우리가 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며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여당뿐 아니라 케빈 매카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전날 MSNBC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협정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다음 행정부로 넘어가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북미 정상의 합의를 조약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 협정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는 행정부 차원을 넘어 미 의회가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쉽게 번복할 수 없는 구속력을 갖춘다는 의미가 크다. 이는 추후 한국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협정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핵 협상이 타결된 후 미국이 협정으로 만든 사례는 드물다. 1994년 10월 북미가 제네바에서 핵 협상을 타결할 때에도 미국 의회의 반대 기류를 의식해 법적 효력을 갖는 ‘합의’(Agreement)가 아닌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로 체결된 바 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가 이뤄낸 이란 핵합의(KCPOA)도 협정이 아니었다. 트럼프 현 대통령이 쉽사리 최근 파기를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다. 당시 의회의 비준을 피해간 이란 핵합의를 두고 ‘행정부 감시라는 의회의 헌법적 기능을 무시한 것’이라고 분노한 상당수 상원의원은 결국 ‘2015 이란핵합의 검증법안’을 통과시켜 이란이 합의 조건을 준수하는지 90일마다 재인증하도록 의무화했다.
관건은 의회의 문턱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느냐다.
기본적으로 행정부가 협상한 내용을 토대로 한 타국 정부 또는 국제기구와의 협정은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비준될 수 있다.
대통령이 상원에 협정 비준결의안을 보내면서 ‘조언과 동의’를 요청하면, 상원 외교위가 찬성, 반대, 또는 의견없음 중 하나로 보고를 해야 한다. 외교위가 찬성 의견으로 표결해야 협정안이 상원 전체회의 심의로 넘어갈 수 있다.
상원은 또 행정부가 제출한 협정안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ABC에 따르면 미 상원이 협정에 찬성한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3월 몬테네그로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승인이고, 협정을 부결시킨 일은 지난 2012년 장애인 차별 금지에 관한 유엔 협정을 거부한 게 마지막 사례다.
현재 상원의 분포는 공화당 51명, 민주당 47명, 무소속 2명이다. 따라서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합의를 의회의 동의 절차에 회부할 경우 공화당은 당연히 동의할 것으로 보이며 민주당 내 상당수도 이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합의의 내용에 따라 민주당 내 반대의 강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의회 비준 여부와 별도로 북미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을 할 경우 이것이 심각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비판론도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그 영향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평화협정의 길로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평화협정에 동의하면 유엔군 사령부의 법적 정당성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과 한국 내에서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군 복무 중인) 우리 청년들을 집으로 데려오자”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에 광범위한 재래식 무기와 병력을 배치한 점을 들어 “미국과 한국은 북한 핵 위협이 제거되고 재래식 위협이 감축될 때까지 평화협정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며 협정에 앞서 “전방에서 북한 병력을 제한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군 병력에 관한 투명성을 제고해 어느 한쪽이 갑자기 침략할 가능성을 줄이는 게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오판의 위험은 물론 긴장을 줄일 수 있다”면서 “평화협정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중대한 안보 영향을 갖기 때문에 반드시 의회에 비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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