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거리에 널브러진 구호물품… 행정체계 붕괴 ‘아비규환’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거리에 널브러진 구호물품… 행정체계 붕괴 ‘아비규환’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3-02-12 12:21
수정 2023-02-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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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도시 안타키아, 절규와 오열의 메아리
영하 날씨에도 노숙하며 ‘가족 구해달라’ 통곡
의료시설도 물자도 부족, 완전히 파괴된 삶의 터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8명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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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지진으로 건물이 기울어져 있고, 전선에는 아이들이 신던 신발이 내걸려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지진으로 건물이 기울어져 있고, 전선에는 아이들이 신던 신발이 내걸려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해가 지면 무너진 건물 앞 거리에는 모닥불이 하나둘씩 피어났다. 콘크리트 더미 어딘가에 가족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는 살아남은 자들이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사실상 유일한 이유였다. 그렇게 무너진 집 앞에서 노숙하면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이들에게는 지진 이후 일상의 전부가 됐다.

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안타키아는 가지안테프주의 진앙지와 불과 130㎞ 떨어진 곳으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도시다. 지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이곳은 살아남은 이들의 절규에 가까운 오열과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 잔해로 도로와 건물의 경계는 사라졌고, 밤이 되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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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유아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유아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아침과 밤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안타키아는 종일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구조대와 각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 무너진 집 앞에서 가족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 외에는 인적도 드물었다. 세간살이가 다 보이는 무너진 건물 사이를 주인을 잃은 개와 고양이들이 정처 없이 오갔다.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모의 구조를 요청하던 라심(25)은 “8층짜리 건물이었고, 고모가 꼭대기 층에 살았다. 고모부는 살아서 도망쳐 나왔는데 고모는 못 나왔다”며 “40명은 매몰돼 있을 것 같은데 시체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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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길거리 곳곳에 무작위로 구호 물품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길거리 곳곳에 무작위로 구호 물품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구호 물품을 특정 장소에서 나눠줄 수 없을 정도로 행정 체계도 무너진 터라 길거리 곳곳에는 무작위로 구호 물품이 놓여 있었다. 박스나 비닐봉지 안 옷이나 물건을 이재민들은 알아서 필요한 만큼 가져갔다. 아스팔트 도로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버려진 차, 널브러진 가구와 생활용품까지. 이미 도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자원봉사자로 이곳에 온 샤반(39)은 “안타키아 시장이 5년 전부터 지진에 취약한 도시인 만큼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중앙정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큰 지진이 날 것이라는 예상이 언론이나 과학자들을 통해 2년 전부터 나왔지만,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샤반은 “지진 이후 피해를 수습하는 체계도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며 “지진세를 거둬서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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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무너진 건물 사이로 쇼파와 가구 등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난 10~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모습. 무너진 건물 사이로 쇼파와 가구 등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시리아와 가까운 국경 도시인 안타키아는 시리아 난민들이 넘어와 사는 낙후된 도시다. 건물이 오래된 만큼 지진에는 더 취약하다는 얘기다. 수년 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이곳에 왔다는 할리트(13)는 지진으로 친구들을 잃었다. 할리트는 “다행히 가족들은 살아서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며 “죽은 친구들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도, 살아남은 친구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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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안타키아로 왔다는 할리트가 무너진 건물 위에서 “친구들이 보고싶다”고 말하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수년 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안타키아로 왔다는 할리트가 무너진 건물 위에서 “친구들이 보고싶다”고 말하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진 이후 많은 이재민은 가까운 아다나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안타키아에서 아다나로 향하는 도로 위는 새벽 이른 시간에도 차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안타키아로 향하는 길목에는 검은색 추모 리본 스티커를 붙인 구호 물품을 담은 트럭, 구조 차량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지진이 나기 전 24시간 운영하던 주유소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기름이 없어 도로에 버려진 차들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영업하는 가게에서도 과자나 빵과 같은 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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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아다나공항에서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가는 길에 있는 가게 안 매대가 텅 비어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튀르키예 아다나공항에서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가는 길에 있는 가게 안 매대가 텅 비어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공항 출국장에도 참사 현장에서 탈출하려는 튀르키예인들이 가득했다. 가족들과 함께 안타키아에서 빠져나온 가제(22)는 “아직도 집 건너편 빌딩이 무너져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소리치던 게 생생하다”고 했다. 평생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이 공항을 통해 이스탄불 등 다른 도시로 빠져나간다 해도 이후 먹고 살길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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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11일(현지시간) 생존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고 외교부가 12일 밝혔다. 사진은 같은날 오후 2시 4분 KDRT가 64살 여성을 구조하는 장면. KDRT는 5시간 이후인 오후 7시 18분과 8시 18분 생존자 1명씩 모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구호대는 지금까지 모두 8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조했다. 외교부 제공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11일(현지시간) 생존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고 외교부가 12일 밝혔다. 사진은 같은날 오후 2시 4분 KDRT가 64살 여성을 구조하는 장면. KDRT는 5시간 이후인 오후 7시 18분과 8시 18분 생존자 1명씩 모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구호대는 지금까지 모두 8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조했다.
외교부 제공


폐허가 된 이곳에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는 생존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긴급구호대는 11일 저녁 7시 18분(현지시간)과 8시 18분 생존자 각 1명씩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생존자는 17살 아들과 51살 어머니로 같은 건물에서 구조됐다. 긴급구호대는 활동 첫날인 9일 2살 어린아이를 포함해 5명을 구조한 데 이어 11일 오후에도 65살 여성을 구조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8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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