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견제력에 따라 자치 역량 결정
젊고 유능한 인재로 지방의원 보강하고
개인 보좌관, 전문가 자문시스템 갖춰야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지방분권에 있어서 자치 역량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5년 이후 지방분권의 중요한 고비마다 자치 역량이 발목을 잡았다. 2010년 지방소비세 도입에서 부가가치세의 10%를 지방으로 넘기려고 했으나 기획재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그 절반인 5%에 그쳤다. 2012년 기관 위임 사무의 폐지에서도 국회는 석연찮은 이유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무산시켰다. 또한 지방의회가 줄기차게 요구한 개인 보좌관제는 행정안전부의 반대에 막혀 2022년 풀제 정책지원관으로 후퇴했다. 자치 역량에 대한 중앙정부의 뿌리 깊은 불신이 빚어낸 결과다.
사실 지방분권의 더 큰 걸림돌은 지방의회의 견제 능력 부족이다. 국회와 중앙부처는 지방의회의 견제력 부족을 이유로 지방분권에 부정적이다. 지방의회의 견제력이 부실한 상황에서 지방분권을 강화하면 제왕적 자치단체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논리가 숫제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거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치 역량이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이는 주권자의 능력 부족을 이유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우리나라 지방의회의 낮은 견제력은 낙인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1963년 ‘아웃사이더’에서 개인의 일탈은 내적 특성이 아닌 주변의 낙인 때문이라고 썼다. 지방의회의 견제력도 중앙정부의 낙인에 의해 저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지방의회는 1991년에 비해 견제력이 크게 증대됐다. 지방의원들의 학력, 조례의 질, 대집행부 질문이 그것을 말해 준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여전히 지방의회의 견제력이 허약하다고 낙인을 찍는다.
지방의회의 견제력이 낮다면 응당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방의원의 자질 개선이 시급하다. 지방의원에 대한 교육훈련이 어려운 현실에서 유능한 인재의 영입이 선행돼야 한다. 지방의원 중에서 우수 인재의 비율이 높아지면 지방의회의 견제력은 저절로 높아진다. 지방의원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의 관점과 태도가 중요한 이유다. 국회의원은 지방의회의 낮은 견제력을 탓하기 전에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지방의원의 정책보좌 인력도 보충해야 한다. 실질적 견제를 위해서는 현재의 풀제 정책지원관이 아닌 개인 보좌관을 허용해야 한다. 지방의원 1인당 0.5명의 정책지원관으로는 지방의회의 견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손발을 묶어 놓고 뛰게 하는 꼴이다. 최소한 지방의원 1인당 1명의 개인 보좌관을 허용하고 성과를 봐 가면서 1인당 2~3명으로 늘려야 한다.
전문가 자문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지방의회만 유독 전문가 활용이 미흡하다. 시도지사는 출연연구원과 분야별 전문가 자문단을 폭넓게 활용한다. 지방의회도 상임위원회별로 전문가를 활용하지만 수당이 낮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트집과 생떼가 난무한다. 힘이 비등해야 견제력이 배가된다. 그래서 시도 출연연구원에 지방의회 연구인력을 강화하고 전문가 자문단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지방분권과 자치 역량의 문제는 닭과 달걀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선후를 따지기 어렵다. 자치 역량에 어울리는 지방분권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지방분권 없이는 자치 역량도 커지지 않는다. 지방의회의 낮은 견제력을 이유로 지방분권을 거부할 게 아니라 실질적 견제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자치 역량이 낮다고 탓하거나 낙인찍기보다는 그것을 키우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2023-09-05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