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제가 잘 성장하지 못해 활기가 떨어지면 모든 국민이 힘들겠지만 그중 가장 힘겨운 계층은 저소득 서민들이다. 일부 고액 자산가나 고소득자는 경제가 어려울 때 오히려 돈 벌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탄탄한 직장이 있는 중산층은 그래도 버틸 만하다. 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고 모아 놓은 재산도 거의 없어 충격에 약한 저소득 서민들은 경제가 안 좋을 때 다른 어떤 계층보다 가장 힘들다. 더 졸라맬 허리도 없고 작은 충격에도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대출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은행 대출은 다른 금융기관 대출보다 금리가 훨씬 낮다. 하지만 은행 대출은 담보도 있고 소득도 높은 계층의 차지다. 저소득층은 대체로 담보도 없고 소득도 낮아서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고소득자들보다 높은 금리를 내야 하고 그나마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도 적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많은 부분은 고소득자들이 가지고 있다. 담보도 많고 상환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총량이 너무 많아 이것이 부실화하면 전체 금융 시스템이 망가질 우려가 있다. 이를 미리 방지하고 가계대출을 연착륙시키고자 최근 들어 금융 당국은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으며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다. 금융 시스템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계대출은 고소득층이 많이 가져갔는데 금융 안정을 위해 이걸 조이니 힘들어지는 건 저소득 서민들이다. 가계대출은 집을 사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주택 구입보다는 생활자금의 성격이 짙다. 또 최근 시행되고 있는 분양 아파트 집단대출에 대한 규제도 가계대출 확대에 따른 금융 시스템 리스크 축소를 위해 바람직하긴 하지만 분양 현장에서는 이 조치 탓에 무주택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며칠 후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당장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경기가 아직 제대로 살아나고 있지 않은 데다 여러 가지 대내외 악재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대출도 죄고 있는데 금리까지 오르면 저소득 서민들은 3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1300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아직은 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특히 지금처럼 경기회복이 더딘 데다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로 우리나라 금리까지 상승하면 부실화할 위험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를 억제하고 연착륙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한 정책은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느라 다른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금융 당국은 서민계층의 어려움을 덜어 주고자 정책서민금융과 중금리대출을 확대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계대출 규제로 생활이 힘들어질 저소득층,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무주택 서민들의 고충을 현장에서 살펴보고 이들의 어려움을 실제로 덜어 줄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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