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그러나 초기 산업화는 큰 도시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를 통해 국토 자원은 수탈당했고, 6·25 전쟁을 통해 기반시설은 파괴됐다. 또한 시장경제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 투자를 끌어들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우리 정부가 서울과 부산 등 큰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상대적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이러한 도농 간의 심한 격차는 국가 안보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도 재정이 열악해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모두 지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지방의 개별 수요를 충족시키기보다 국가 전체적인 총량 성장을 ‘미덕’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거래가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국경은 일종의 풍선처럼 국내 기업의 보호막이 돼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지역의 성장은 다른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하다. 특히 경제활동 기회에 민감한 인구, 자본, 기술 등은 국가의 경제정책 기조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총량 경제성장 정책은 지역 간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 1960년 서울의 인구 집중도는 9.8%에 지나지 않았으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1970년 서울의 인구 집중도는 18%로 급격히 상승했다. 그해 4월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수도권 인구의 과밀집중 억제에 관한 기본지침’ 등 오랜 수도권 인구 억제 정책에도 수도권 인구 집중도는 1990년 42.7%, 2014년 49.4%로 치솟았다. 이러한 결과는 규제 일변도의 수도권 억제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쯤 해서 지역 특성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지역 격차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그동안 나라도 발전했고,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역 격차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 격차는 국가 평균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역동성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도권이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의 활동 여건을 규제 일변도로 억제하기보다는 낙후된 지역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수도권 규제를 통해 이 지역에서 빠져나간 기업이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외국으로의 기업 이전이 자유롭게 된 2000년대 초반 증명된 사실이다. 수도권에서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은 민간부문 경제활동 과실을 키워 줄 것이고, 이러한 수도권 경제성장에서 추가로 얻게 되는 중앙정부 재정은 낙후된 지역의 경제활동 여건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 때문에 다른 지역의 경제가 열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덕분에 다른 지역도 잘살게 되는 과정을 만들기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셈이다. 저절로 발전하는 지역을 끌어내리면 창의력과 경제 활력소를 활용하지 못하고 낙후된 지역을 끌어올리고 보충할 수 있는 재원 마련도 어렵다. 같은 것을 놓고 경쟁시키면 대립 관계가 형성되지만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모할 수 있게 하면 ‘상생·협력 관계’가 만들어진다. 지방분권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중앙정부는 선진 지역 발전을 통해 추가로 확보되는 재원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적극적으로 보충하고 ‘끌어올리는’ 정책 수단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2015-10-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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