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보시라이 사건과 중국정치 바로보기/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보시라이 사건과 중국정치 바로보기/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입력 2012-03-31 00:00
수정 2012-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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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지난 15일 보시라이 충칭시 당 서기가 전격 해임된 이후, 중국의 정치 변동에 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지나치게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중국 정치상황의 큰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번째 문제는 보시라이 해임을 계기로 중국 최고지도부 내의 파벌 간 권력투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보시라이가 태자당의 일원이라는 점을 들어 이들 계파의 몰락이라거나, 또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파벌 간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해석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근거 없이, 상투적인 파벌 구도 속에 꿰맞추는 듯한 인상을 준다.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서 파벌주의 특징은 오랜 역사를 갖지만, 최근 20년간의 양상은 점차 약화되는 추세다. 과거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의 파벌정치는 생사를 건 치열한 권력투쟁이었고, 그 결과로 승자독식의 권력구조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장쩌민 시대 이후 상이한 파벌 간 타협과 합의 문화가 상당히 정착되었고, 그 결과 집단지도체제라는 권력구조를 형성하였다. 또한 과거의 파벌경쟁은 치열한 이념·노선투쟁을 수반했지만, 최근의 파벌경쟁은 노선투쟁보다는 자리 안배를 둘러싼 세력 간의 경쟁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이번 보시라이 해임의 경우도 최고지도부 간 합의가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합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파벌 간 대립구도가 형성되었을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시라이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갈 수 없다는 상황인식과 사건 처리 이후 정치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강력한 공감대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국의 정치문화에서는 보시라이 특유의 정치스타일이 지도부 다수에게 반감을 샀고, 왕리쥔 사건을 계기로 버림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복잡하고 거대한 중국에서 ‘타협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신중함과 냉철함이다. 그런데 보시라이는 국내외 언론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능숙하게 포장하고 대중적 인기를 이끌어 내는 데 남다른 수완을 발휘해 온 인물이다. 그의 튀는 정치스타일에 대한 지도부 사이의 반감 문제를 반드시 파벌정치 구조와 연결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해석의 두 번째 문제점은 ‘충칭모델’에 관한 것이다. 충칭모델은 보시라이가 추진한 일련의 좌파적 개혁실험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성장보다 분배에 역점을 두면서 전통적 사회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보시라이 낙마와 함께 충칭의 개혁실험도 종말을 고할 것인가. 보시라이식의 충칭모델은 사라지겠지만, 충칭모델에서 제기한 중요한 개혁의제는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중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사회는 지니계수 0.5에 이르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3배 이상의 수입 격차를 보이는 도농(都農) 간 격차, 연해지역과 서부내륙지역 간의 발전 격차 문제를 외면하고서는 더 이상의 발전과 안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충칭모델이 비판받는 이유는 그 문제의식이나 개혁실험 자체가 현재 중국 지도부가 추구하는 발전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보시라이 개인의 문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충칭모델의 시작은 보시라이 부임 이전부터 황치판 시장이 서부내륙지역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조건에 맞는 발전모델을 모색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보시라이 부임 이후, 그의 정치업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더해지면서 부작용과 정적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부패 근절과 사회주의적 정신가치를 강조하는 창훙다헤이(唱紅打黑)와 같은 선동·공포정치는 과도한 충성경쟁과 경직된 도시문화를 만들었고, 종종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원자바오 총리가 언급한 ‘문화대혁명 재발’의 우려는 이 대목을 지적한 것이다. 때문에 충칭모델의 평가에서 보시라이 개인의 통치스타일에서 초래된 부정적인 측면과 성장만능주의 정책의 폐단에 대한 대안 제시라는 측면,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2012-03-3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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