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제 문화교류는 문화부에서 맡아야/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제 문화교류는 문화부에서 맡아야/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입력 2011-11-02 00:00
수정 2011-11-0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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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국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논란 얘기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빌려 ‘문화외교 활성화 및 증진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은 외교통상부가 문화외교 정책 수립의 주무부처가 되고 해외문화원도 직접 운영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외교를 잘 하자는데 웬 참견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법안은 의원입법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문화적 창의성이 없는 기업은 살아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좁게는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산업, 곧 콘텐츠산업은 이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주류산업이 되었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앞다퉈 문화를 주요 정책 의제로 설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문화교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정책 분야다. 그간 이 업무는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왔다. 그런데 이참에 외교부가 헤게모니를 쥐겠다고 나선 것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같은 소모적인 움직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첫째, 지금은 전문화 시대다. 어설픈 아마추어가 골목대장 노릇을 할 수가 없다. 문화의 특성 가운데 축적성(蓄積性)이라는 것이 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여진 것이다. 문화교류 업무에 대한 정부의 전문성도 단기간 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정부부처 간 전문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둘째, 국제 문화교류의 핵심은 콘텐츠다. 미국이 한·미 FTA 협의 과정에서 저작권 기간을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밀어붙인 이유가 바로 그들의 콘텐츠 우월성 때문이 아닌가. 방송과 통신 간의 융합을 넘어 미디어 간, 산업 간 융합이 일반화되고 콘텐츠를 담을 용기인 콘텐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풀뿌리 콘텐츠 시장과 호흡하며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부처가 문화부겠는가, 외교부겠는가.

셋째, 국내든 국제든 문화정책에서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나 정부로부터 지원은 받되 가능하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는 이른바 정부 불간섭원칙을 일컫는다. 국제문화교류도 가능한 한 정부 색채를 띠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문화에 가급적 외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또 각국의 문화원들이 대사관이나 공관과는 별도의 건물을 두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철학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한류와 함께 반한류·혐한류도 커져가는 상황에 외교부나 공관이 앞장서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우려된다.

넷째, 기본적으로 정부부처는 각자의 고유업무에 충실하면 된다. 괜히 이 업무 저 업무 만지작거릴 시간에 자기 본분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 국익에 이롭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복지, 노동 등 정부의 모든 부처업무를 외교라는 이름으로 각색하여 다 맡겠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나비넥타이 외교시대가 아니다. 그야말로 시장을 속속들이 잘 아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비즈니스 외교가 필요한 때다. 외교부는 계선(系線)이 아니라 국제업무를 보조하는 전문참모(參謀)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이 본분이고 이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다.

최근 유럽에서도 우리 대중음악이 관심을 끌고 있다. 따라서 외교부가 문화교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는 문화부가 문화교류를 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잘하면 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국회는 문화부가 이 분야 산업을 더 진흥시키고 국제교류 또한 활성화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문화부 관련 법안에 있는 내용을 살짝 바꿔 새로 법안을 만드느니, 조직을 만드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국제문화 교류는 다른 나라를 배려하면서 조용하면서도 지혜롭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문화외교 활성화 및 증진에 관한 특별법안’은 바로 철회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1-11-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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